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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하라" 밧줄 몸 묶고 주민 구했다…폭우 뚫은 마을 히어로

중앙일보

2025.07.22 20:01 2025.07.23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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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경남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가 산사태에 휩쓸려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1
극한 호우가 쏟아진 경남 산청군에서 마을 이장들의 발 빠른 대처로 많은 주민이 목숨을 건졌다.

23일 산청군에 따르면 차규석 생비량면 송계마을 이장과 박인수 산청읍 모고마을 이장은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19일 자신들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차 이장은 이날 오후 3시쯤 마을이 침수되는 상황에서 밧줄에 몸을 묶고 플라스틱 팔레트(화물 운반용 깔판)에 의지해 주민들을 구했다. 차 이장은 주민 2명이 침수 중인 주택에 고립됐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어 지인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일부 구간은 2m 이상 깊이의 물이 찼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물살을 헤치면서 팔레트에 몸을 의지해 주택 진입에 성공했다. 주택 안에는 고령의 부부가 있었다. 차 이장은 부부의 몸을 밧줄로 묶고 팔레트를 잡게 한 뒤 건물 벽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고,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이들을 마을회관으로 대피시켰다.

차 이장은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뒤도 안 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며 “주민을 구하는데 함께 해주고 제 몸을 묶은 생명줄을 잡아준 지인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이장도 이날 낮 12시20분쯤 물이 찬 주택에 고립된 고령의 여성 2명을 대피시켰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스스로 대피가 어려웠고 박 이장은 물길을 헤치고 주택에 들어가 차례로 업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일대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가 최근 내린 폭우로 크게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생비량면 상능마을 주민들은 김광연 이장의 방송 덕분에 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긴급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 김 이장은 마을 도로가 갈라지는 모습을 목격한 뒤 급히 대피 방송을 했다.

김 이장은 “19일 오후 7시쯤 마을 아래 대나무밭에서 ‘딱딱’ 거리며 대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며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도 쩍쩍 갈라지며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을방송으로 “빨리 피신하라. 되도록 주차장으로 빠져나와 달라”고 알렸다.

방송을 들은 주민 15명은 긴급 대피했다. 약 6분 뒤쯤 마을 전봇대가 한꺼번에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마을 지반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시 주민 9명이 마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다행히 젊은 주민이나 구급대원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했다.

마을을 덮친 산사태로 상능마을에 있는 집 24채 전체가 토사에 쓸려 내려가 파묻히거나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산청군에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평균 632㎜의 집중호우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23일 경남도 등에 따르면 이날 현재 집중호우로 인한 산청지역 인명피해는 사망 12명, 실종 2명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지난 22일 오후 실종자 2명을 추가 발견한 이후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장구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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