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시험지 유출 사건과 관련해 해당 학생이 입학 후 2년 반 동안 훔친 시험지를 이용해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안동경찰서는 23일 전직 기간제 교사 A씨(31)와 함께 학교에 침입해 시험지를 상습적으로 빼돌린 혐의(특수절도 및 야간주거침입절도, 뇌물공여 등)로 학부모 B씨(48)와 이들의 범행을 도운 학교 행정실장 C씨(30대)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B씨의 딸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 D양(10대)도 불구속 송치했다. D양의 담임이었던 전직 기간제 교사 A씨는 앞서 지난 18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
교사·학부모·행정실장 가담 범행
경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지난 4일 오전 1시 20분쯤 안동시 한 여자고등학교 교무실에 침입하는 등 2023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D양이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 무단 침입해 시험지를 상습적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D양은 유출된 시험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제와 답을 미리 외우고 시험을 치른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해당 학교에 재직 중이던 2024년 2월까지는 A씨가 직접 시험지를 빼돌렸고, A씨가 퇴직한 후부터는 B씨와 함께 학교에 무단침입해 시험지를 훔치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촬영해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A씨에게 시험지를 건네받을 때마다 수백만원씩, 모두 약 20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C씨의 경우엔 금전 거래 수수 등의 혐의는 확인되지 않아 증거인멸, 방조 등의 혐의만 적용됐다. C씨는 이들의 침입을 묵인하고 이후 학교 폐쇄회로TV(CCTV) 저장 기간을 단축시키거나 영상을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년간 이어진 이들의 범행은 A씨와 B씨가 지난 4일 오전 1시 20분쯤 학교에 몰래 들어가 시험지를 훔치려다가 교내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며 적발됐다. 놀란 이들은 황급히 달아났지만, 다음 날 결국 경찰에 체포됐다.
━
학생에게 개인 과외 해준 혐의도
A씨가 지문을 통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퇴직 후에도 교내 경비 시스템에 지문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번호까지 정상적으로 입력하고 교무실로 들어갔는데도 경비 시스템이 울린 것은 시스템 오류 때문으로 보인다. 시스템이 오작동해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A씨와 B씨는 기말고사 시험지를 챙겨 아무도 모르게 학교를 빠져나갔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A씨와 B씨는 D양이 중학생이었던 2020년 교사와 학부모로 처음 만났다. 당시 현직 교사였던 A씨가 D양에게 개인 과외를 해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현행법상 현직 교사는 별도 허가 없이 개인 과외를 할 수 없다. A씨에게 교육공무원법 위반 혐의, B씨에게 현직 교사를 과외 선생으로 채용한 혐의(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 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가 적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D양은 고등학교 내신 평가에서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측은 D양을 퇴학 처리하고 1·2·3학년 전 성적을 모두 0점 처리했다. 매번 만점 또는 1문제 정도 틀리던 D양은 지난 4일 기말시험에서 수학은 40점, 윤리는 80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교 교사들은 이전 시험에서 B씨 딸이 교내 시험은 1등을 도맡으면서도 교외 모의고사 성적은 부진하자 ‘내신에 강한 학생’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경북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평가 관련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고 방범 보안 경비 시스템을 전면 강화하는 등 예방 중심의 관리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