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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 무솔리니의 꿈과 좌절

중앙일보

2025.07.23 08:04 2025.07.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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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잘잘못을 떠나 무솔리니(1883~1945·사진)는 타고난 수재였다. 이탈리아의 한촌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인물 좋고, 언변 좋고, 고전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까지 뛰어나 칭송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꿈을 이루리라고 생각했다.

동서양에서 대장군이 출전할 때면 황제는 왼쪽 장수에게 도끼(斧鉞·부월)를, 오른쪽 장수에게는 깃발(旌旗·정기)를 주는데 이를 동양에서는 절월(節鉞·束干), 그리스·로마에서는 파스케스(fasces)라 했다. 깃발은 지휘권을, 도끼는 처형권을 뜻한다. 무솔리니는 여기에서 암시를 얻어 당명을 파시스트(fascist)라 했으니 말을 듣지 않으면 도끼로 찍는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파시스트의 문양에는 도끼가 숨어 있다.

파시스트를 가리켜 팩션(faction), ‘패거리’라고 가르치는 것은 틀렸다. 왕권이 허약함을 보이자 무솔리니는 8000명의 파시스트를 이끌고 왕정을 타도하고자 밀라노를 출발했는데 로마에 이르니 따르는 병력이 8만 명에 이르렀다. 겁에 질린 국왕 에마누엘레 3세는 그에게 대권을 위임해 이탈리아제국이 탄생했다.

고전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들으러 갔다. 토스카니니가 무대에 올라 무솔리니가 로열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나는 독재자를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자 무솔리니는 서슴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 즉석에서 청중을 향해 연설했는데 모두가 감탄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알다시피, 그는 히틀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써 인류 최악의 비극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의 터전인 밀라노에서 농민들의 곡괭이에 찍혀 일생을 마쳤다. 그는 타고난 재주를 어떻게 쓰면 안 되는가를 역사에 보여 주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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