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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대출에서 코인까지, 혁신은 위기를 품는다

중앙일보

2025.07.23 08:06 2025.07.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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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1782년 미국 최초의 상업은행인 북미은행(BNA)이 문을 열었다. 이후 은행들은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을 활성화했다. 20세기 초까지 모기지 시장은 낙후된 구조였다. 집값의 절반만 대출이 가능했고, 5년 미만의 짧은 만기, 변동금리, 일시상환 방식이 주를 이뤘다.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치자, 모기지론 시장은 큰 위기에 빠졌다. 실업률이 25%로 치솟으며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1933년 한 해에만 수백만 가구가 대출 원리금을 연체했고, 하루 평균 1000가구의 집이 압류됐다.

일러스트=김지윤
그해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의 하나로 주택금융 제도를 전면 개혁했다. 주택대출공사(HOLC)를 통해 장기·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했고, 30년 만기 고정금리 모기지라는 새로운 모델도 도입했다. 이어 연방주택청(FHA)과 연방국립주택저당조합(FNMA, 페니메이)의 출범으로 정부는 보험과 유동성 제공 역할을 맡았다. 이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정부국립주택저당조합(GNMA,지니메이)을 설립하고, 모기지 담보로 증권을 발행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모기지담보증권(MBS)으로 은행은 대출 자산을 유동화해 더 많은 대출을 일으킬 수 있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2차 모기지 시장법’(SMMEA)에 서명했다.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를 필두로 월가가 로비에 나선 결과였다. 이 법은 월가를 뿌리부터 뒤흔든 거대한 금융 혁신을 반영했다. 법 통과로 민간 금융기관도 MBS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증권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월가는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했다.

2001년 미 경기가 침체되자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렸다. 늘어난 유동성은 주택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월가는 MBS에서 한 걸음 더 진화한 모기지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CDO에는 고위험·저신용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물가 불안을 우려한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해졌다. 연쇄적으로 MBS와 CDO 가격이 폭락했다. 월가 전체가 붕괴로 내몰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스테이블 코인을 규정한 지니어스 법에 서명했다. 그는 이 법이 인터넷에 맞먹는 금융의 위대한 혁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날 미 하원은 스테이블 코인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규제의 허점이다. 스테이블 코인을 대출에 활용하는 디파이(DeFi, 분산금융)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충분한지 의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도 모기지 브로커에 대한 느슨한 규제가 위기를 키운 전례가 있다. 금융 혁신은 늘 위기를 함께 잉태한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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