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했다. ‘퍼싱 원칙(Pershing Principle)’이라는 유령이.
퍼싱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유럽 원정군(AEF) 사령관이었던 존 조지프 퍼싱(1860~1948) 장군이다. 전쟁에 뒤늦게 뛰어든 미군은 병력이 영국·프랑스군보다 적었고, 전투를 치러본 경험도 없었다. 영국·프랑스군은 미군을 자기들 휘하에 두거나 보충 병력으로 쓰려고 했지만, 퍼싱이 거부했다. 이를 계기로 미군은 독자적 지휘권을 다른 나라에 넘기지 않는다는 전통이 세워졌고, 이게 퍼싱 원칙으로 알려졌다.
‘한·미 전작권 변수’ 의견 있지만
검색해도 안 나오는 유령 원칙
전작권 가져가라면 오히려 문제
주한미군 감축 현실화될 수도
퍼싱 원칙은 2017년부터 한국에서 등장했다. 그 해 ‘임기 내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공약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했다. 전작권은 전시 군대를 지휘하고 통제하는 권한이다. 전작권이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환되면 전시 대장 계급을 단 한국군 사령관이 한국군과 함께 한·미연합사령부의 미군을 지휘한다. 현재 전작권은 연합사령관을 겸한 주한미군 사령관이 갖는다.
전작권 전환 불발과 퍼싱 원칙은 무관
2017년 6월 한·미 정상은 “한국군으로의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 조속히 이뤄져야 하며, 이후 한국이 연합방위를 주도한다”고 합의했다. 같은 해 10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조속한 전작권 전환에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재확인했다. 전작권 전환 논의가 한창이던 2017~2018년 퍼싱 원칙 때문에 미국이 소극적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을 전환하지 못했다. 퍼싱 원칙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퍼싱 원칙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미국 문서에서 ‘Pershing Principle’을 찾아볼 수 없고, 구글 검색에서도 안 나온다. 실체가 없는 유령인 셈이다.
1993년 미 국방부의 문서(ADA323720)에 따르면 퍼싱은 1918년 3개 군단을 프랑스군 아래로, 6개 사단을 영국군 아래로 보냈다. 막 유럽에 도착한 미군이 단독 작전을 펼 수 있도록 전장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는 나중에 이들의 작전통제권을 되찾았다. “미군의 정체성을 반드시 보존하라”고 뉴턴 베이커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의 다국적 군사 작전 참가 기록을 살펴보면 미군이 외국 지휘관의 작전통제에 들어간 전례가 제법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전역의 미군은 당시 해럴드 알렉산더 영국 원수가 맡은 이탈리아 주둔 연합군 사령부의 작전 명령에 따랐다. 1991년 걸프 전쟁 때 미 제82 공수사단의 여단이 프랑스 제6 경기갑 사단의 지시를 받았다.
종전 후 ‘세계의 경찰’을 자임한 미군은 다국적군이나 유엔의 깃발 아래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1년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그해 8월 31일 현재 43개 미군 부대가 7개 유엔의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RL31120). 당시 미군 6515명은 코소보에서 프랑스 장군이, 865명은 시나이 반도에서 캐나다 장군이 각각 작전통제했다.
미국 안에서 반발이 나왔다. 특히 고립주의 성향의 상·하원 의원들이 주권 침해를 우려했다.
1996년 ‘마이클 뉴 사건’은 이런 기류에서 불거졌다. 당시 마이클 뉴 미 육군 상병의 소속 부대가 마케도니아 유엔군으로 파병됐다. 뉴 상병은 유엔군의 파란색 베레모와 부대 마크 착용을 거부했다. 자신이 유엔이 아닌 미국에 충성을 맹세했고, 지휘 계통과 작전 자체가 헌법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 재판에서 명령 불복종으로 불명예제대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권리 침해라며 행정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다.
CRS는 군사적 이점과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미군의 작전통제권을 외국 지휘관에게 위임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의 주권이나 미 대통령의 통수권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두르면 미국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그렇다면 퍼싱 원칙은 존재하지 않으니 이제 전작권 전환은 시기의 문제일까. 답이 간단치 않다. 외국 지휘관의 미군 작전통제는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전쟁이나, 미군이 소수, 또는 작전 지원에 그친 경우들이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가능했고, 목적이 달성되면 바로 미국이 권한을 가져갔다.
반면 전작권 전환 후 한반도에서 한국의 전시 미군 작전통제권은 ‘항시적’이다. 그런데 미국의 기여도가 한국보다 낮지 않다. 유사시 미국이 병력 60여만 명, 항공모함 5척을 포함한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500여 대를 증원전력으로 한반도에 보낸다는 연합 작전계획이 짜여 있다. 그리고 필요하면 미국은 핵우산도 씌워준다(확장억제).
계산을 달리 해보자. 전작권 전환과 한국 주도의 연합방위는 전시 미국이 약속한 증원전력을 보내지 않고, 군수·정보 제공 등 비전투 임무만 수행한다는 구도가 아닐까. 적어도 외국 지휘관의 미군 작전통제 사례에서 유추하면 말이다. 유엔군이나 평화유지군은 기본적으로 치안 회복이나 민사 작전에 투입된다.
정부는 최근 전작권 전환은 한·미 간 관세·안보를 연계한 ‘패키지 딜’ 협상의 의제는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뤄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한국이 전작권 전환 카드를 먼저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작권 전환→주한미군 감축→주한미군 사령관을 4성(대장)에서 3성(중장)으로 격하→유엔군사령부의 일본 이전→단일 전구 창설 등 ‘연쇄반응’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동맹 기반 위에 전작권 환수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현 정부 이내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칫 미국의 페이스에 말려들 빌미가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