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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문화난장] 실물 체험의 시대…아날로그의 반격인가

중앙일보

2025.07.23 08:20 2025.07.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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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영화 ‘국제시장’ ‘베테랑’ ‘서울의 봄’ 등의 천만 흥행을 이끈 배우 황정민이 올 가을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무대에 선다. 10년 만의 뮤지컬 출연이다. 올 9월 재연에 들어가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는 TV 드라마로 익숙한 얼굴, 김병철과 이상윤이 새로 캐스팅됐다. 탤런트 전소민·윤시윤은 지난 11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사의 찬미’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이렇듯 영상 매체를 통해 명성을 얻은 배우들의 무대 진출이 잦아졌다. 올 상반기만 해도 32년 만에 연극에 출연한 이영애를 비롯해 채시라·유승호·손호준 등이 공연 무대에 섰다.
팬데믹 이후 대면 콘텐트 각광
공연 매출, 영화 크게 앞질러

직접 느끼는 '물성 매력' 재평가

'공동 소비' 경험에 유대감 형성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개인전’. 94일간 53만여명이 다녀갔다. 우상조 기자

이들이 무대로 눈을 돌리는 이유를 단순히 예술적 도전 정신이나 관객과 실시간 호흡하며 얻는 희열로만 해석하긴 어렵다. 최근 급성장한 공연 시장이 이들을 무대로 이끄는 유인책이 됐다.

매출 규모 측면에서 공연 시장이 영화 시장을 앞지른 건 2023년이 처음이다. 공연 매출(1조2696억원)이 영화(1조2614억원)보다 82억원 많았다. 그런데 그 격차가 지난해엔 2592억원(공연 1조4537억원, 영화 1조1945억원)으로 크게 벌어졌고, 올해는 상반기(공연 7414억원, 영화 4079억원)에만 3335억원 넘게 매출 차이가 났다. 불과 2∼3년 사이 완전히 뒤집힌 판세다.

더 타임스 "군중을 갈망하는 시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경험한 비대면 상황은 대면형 문화 콘텐트에 대한 욕구를 폭발시켰다. 화면 속 픽셀이 아닌 실재하는 존재에서 감각적·정서적 만족감을 느끼며 ‘물성(物性) 매력’에 빠져들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물리적 체험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실재적 콘텐트의 부상은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최근 하루 평균 5600여명 관객을 동원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최다 기록을 세우고 막을 내린 호주 조각가 론 뮤익 개인전이나 얼리버드 예매 단계에서 입장권이 완판돼버린 서울국제도서전 등도 체험 자체를 가치있는 문화 상품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취향을 드러낸다. 특히 2030 젊은 관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이들로 북적이는 전시장 풍경은 ‘경험의 콘텐트화’에 이어 ‘집단적 실재 경험’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지난해 7월 ‘2020년대 중반의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로 ‘군중(crowd)’을 꼽은 분석 기사를 냈다. 콜드플레이와 테일러 스위프트 등의 공연에 모여든 대규모 관중을 사례로 들며 “군중을 갈망하는 시대”라고 했다. 인간은 ‘함께 하는 느낌’을 추구한다면서다.

공연·전시·축제 등에서의 ‘공동 소비(shared consumption)’ 경험은 감정의 증폭과 사회적 유대감 형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미적 쾌락의 토대가 된다. 음반·음원 매출이 주 수입원이던 K팝 시장의 무게 중심이 공연과 MD(굿즈)로 옮겨간 것도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하이브의 경우 올 1분기에 공연 매출 비중이 30.99%로 음반·음원 매출 비중(27.27%)를 처음 앞질렀다. 음반·음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하는 사이 공연 매출은 252. 3%나 증가했다. YG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 역시 공연 매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실물 굿즈, 디지털 네이티브에 인기
직접 만지고 간직할 수 있는 굿즈의 인기도 물성 매력에서 출발한다. 촉감·냄새·무게·온도 등 실제 감각이 정서적 유대와 애착을 유도하는 것이다. 가상 경험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특히 소구력이 크다.

SAMG엔터와의 협업으로 만든 걸그룹 하츠투하츠 굿즈.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굿즈 개발과 판촉을 위한 K팝 기획사들의 움직임도 발빠르다. SM은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의 캐릭터를 이용한 인형 키링, 피규어, 틴 배지 등의 굿즈를 SAMG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만들었다. SAMG엔터는 ‘티니핑’ 캐릭터 상품으로 ‘파산핑’ ‘등골핑’ 바람을 일으키며 올 상반기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주가 상승률(622%) 1위를 차지한 기업이다. 굿즈 판매를 위한 팝업스토어도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시켜 복합 문화 플랫폼처럼 운영된다. 하이브는 올 상반기에만 아시아·북미·중남미 등에서 35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해 63만 명을 불러모았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의 미디어에 끊임없이 개입해 새로운 모습과 위치를 찾게 한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일까.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아날로그 트렌드가 탄생하는 그 순간 말이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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