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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의 시선] 트럼프 협상, 대한민국 안보부터 챙겨야

중앙일보

2025.07.23 08:28 2025.07.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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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운명의 한 주다. 트럼프 행정부가 두 차례 유예한 상호관세 부과 시점이 8월 1일로 다가오고 있다. 22일(미국시간) 한국과 같은 25%를 통보받았던 일본이 상호 관세 15%에 합의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 재연 가능성은 작아졌다.

트럼프의 동맹 압박을 두고 동맹을 해체하려는 것이냐는 원성이 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무역수지 적자(2024년 9184억 달러)와 안보 부담을 대폭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독주는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상황은 구체적인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트럼프가 통보한 관세율을 얼마나 낮추느냐는 막판 주고받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안보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먹고사는’ 통상 협상과는 달라
국방비 증액 등 안보 강화해야

지금까지 미국과 합의를 본 국가는 일본(15%)을 포함해 영국(10%), 베트남(20%), 인도네시아(19%), 필리핀(19%) 등 5개국이다. 미국의 주요 교역국 중 유럽연합(30%), 한국(25%), 대만(32%) 정도가 통상, 투자, 안보 등으로 엮여있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처지다.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김정관 산업장관,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 당국자들이 이번 주 워싱턴으로 총출동하는 것도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은 통상 분야에선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개방과 온라인 플랫폼법 철회 등 비관세 장벽 철폐, 투자 분야에선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와 대미 투자 펀드 조성, 안보 분야에선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전략적 유연성 강화 등의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미국에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으려는지는 그야말로 깜깜이다. 협상의 특성상 보안 유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사안 하나하나가 국민의 생업과 기업의 미래, 한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이라는 점에서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트럼프발 청구서를 토대로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한미 동맹과 북한 비핵화 등 ‘죽느냐 사느냐’의 안보 관련 협상은 대한민국 안보 강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러시아발 안보 위협에 노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예산 압박에도 기존 국내총생산(GDP)의 2%도 채 안 되던 국방비를 5%(직접 군사비는 3.5%)로 늘리기로 결단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인도·태평양 지역은 중국·러시아·북한의 안보 위협이 집중된 미래의 화약고다. 전쟁에 대비해야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국방비 증액 요구는 우리 안보를 위해서라도 검토할 수 있는 카드다. 올해 한국의 국방비는 61조6000억여원(GDP의 2.32%)이다. 2035년까지 GDP의 3.5% 수준을 달성하려면 한국의 잠재 성장률(2.0%) 기준으로 매년 5.5~6%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년 자주국방 드라이브에 따라 국방비 증가율이 7~8% 수준이었던 적도 있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도 국방비 증액의 범위 안에서 대응할 수 있다.

‘먹고 사는’ 이슈인 통상 협상은 트럼프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는 선에서 타협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재계의 대표적인 미국통인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트럼프가 원하는 게 뭔지 잘 판단해 지금 손해를 좀 보더라도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줄 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현실론을 폈다. 중국은 물론 EU, 일본 등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좋은 조건을 얻게 되면 오히려 ‘헤드 스타터’(선두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물론 타협으로 인해 피해가 우려되는 국민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트럼프의 임기가 아직 3년 반 남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트럼프 이후를 내다보는 협상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한 세기에 걸친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말처럼, 트럼프 이후에도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환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라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관점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상(end state)을 그리는 협상을 진행했으면 한다.

이 과정에서 한번 약속하면 되돌릴 수 없는 합의와 되돌릴 수 있는 합의를 구분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대미 투자나 국방비 증액은 가역적이지만, 주한미군의 역사를 볼 때 2만8500명의 주한미군 감축이나 전시작전권 환수는 되돌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비가역적인 합의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차세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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