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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교황의 도시 돌튼

Chicago

2025.07.2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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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

박춘호

인구 2만명의 쿡카운티 서버브. 94번 고속도로와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시는 1892년 조지 돌튼이라는 여객선 산업을 하는 초기 정착주민의 이름을 따서 설립됐다. 이후 제조업이 번성했고 열차 제조업이 크게 부흥했다. 인근에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열차 제조사인 풀만사가 있어 이와 연계된 관련 산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농산물로 만든 제품과 벽돌 제조업도 번성했는데 이는 인근에 거대하게 형성된 진흙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보면 90%가 흑인이고 백인과 라티노, 아시안 비중은 미약하다. 중간 가구 소득은 5만8000달러 가량이다. 최근 몇년 간은 논란을 불고 온 시장으로 인해 미디어의 집중적인 이목도 끌었다. 티파니 헨야드라는 시장이 시 재정을 낭비하고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도시는 돌튼(Dolton)이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20마일 가량 남쪽으로 떨어진 서버브로 동쪽으로는 캘류맷 시티, 남쪽으로는 사우스 홀랜드, 서쪽으로는 하비, 북쪽으로는 웨스트 풀만으로 둘러쌓인 도시다. 94번 고속도로를 타고 인디애나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왼쪽으로 산 크기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나오고 우측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돌튼이다. 이 돌튼이 최근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교황 리오 14세가 살었던 집이 있기 때문이다.  
 
본명이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인 교황 리오 14세는 1955년 9월 14일 시카고의 머시 병원에서 출생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돌튼에서 부모와 두 명의 형과 함께 지냈다.  
 
교황은 시카고 리버데일 커뮤니티와 인접한 링컨길의 성모승천 성당(St. Mary of the Assumption)에 다녔고 성당이 운영하는 학교에 재학하면서 성당 합창단원으로, 복사(Altar boy)로도 일했다. 당시 돌튼에 살았던 주민들은 성모승천 성당과 학교는 지역사회 허브로 많은 행사와 추억들이 담긴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에는 천주교 신자라면 당연히 자녀들을 가톨릭 학교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성모승천 성당은 1880년대 설립됐으며 첫 건물은 137가와 인디애나길이 만나는 곳에 세워졌다. 당시 이 성당 건립에 사용된 목재는 기부로 충당됐으며 부지는 열차 제조사 대표였던 조지 풀만이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성당 건물은 1916년에 지어졌고 교황이 실제로 다녔던 성당 건물은 1956년, 교황이 태어난 후 1년 뒤에 건립됐다. 138가와 레이덴길에 위치한 이 성당은 아쉽게도 1989년 문을 닫았다. 신도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성당 건물 자체는 남아 있다.  
 
돌튼시에 따르면 성당 주변에는 1960년대 당시 큰 영화관과 상점들이 즐비했다. 또 어린 자녀를 갖고 있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소프트볼 경기장도 공원 곳곳에 마련되기도 했다. 돌튼 공원에서는 독립기념일 연휴 기간 동안 연중 가장 큰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퍼레이드와 카니발을 중심으로 7월1일부터 4일까지 축제 기간이 지속됐는데 이 전통은 1930년대에 시작돼 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돌튼에는 또 교황이 다녔던 유치원도 있다. 아이반호 매너 스쿨이라는 곳인데 142가에 위치한 이 곳은 현재 148 교육지구의 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유치원을 다닌 교황은 이후 성모승천 성당 학교에 재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성모승천 성당 학교를 1969년에 졸업하고 미시간주에 있는 세인트 오거스틴 신학 고교로 진학한다. 이후 잠시 시카고 남부 서버브 올림피아 필즈의 톨렌타인 신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그 뒤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빌라노바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다. 톨렌타인 신학교는 112에이커 부지에 1958년 개교한 곳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운영했다. 학교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가입한 톨렌타인의 성인 니콜라스에서 따왔다. 올림피아 필즈의 톨렌타인 신학교는 1968년 문을 열었으나 시카고의 하이드파크에 가톨릭 신학대학교가 개교하면서 많은 신학생들이 그쪽으로 옮겨가며 1974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직도 신학교 교정은 그 자리에 있으며 현재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 신부들이 은퇴하고 머무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학교 인근에는 시카고를 상징하는 음식인 딥 디쉬 피자 전문점 아우렐리오 피자가 위치해 있다. 홈우드에 위치한 이 딥 디쉬 피자집은 교황 리오 14세의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교황이 추기경이었을 당시 이 곳을 방문해 친구, 지인들과 딥 디쉬 피자를 먹고 기념 사진을 촬영한 것이 이 피자집에 걸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제이슨 하우스 돌튼 시장에 따르면 교황이 살던 집은 시가 37만5000달러를 주고 최근 매입한 상태다. 212번지 이스트 141가에 위치한 이 집을 어떻게 활용할지 여부는 시가 구성한 위원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이 집은 교황이 부모와 두 형과 함께 살었던 곳으로 1969년 미시간 신학 고등학교로 이주하기 전까지 줄곧 거주했다. 교황의 아버지 루이스 프리보스트는 학교 교직원이었고 1997년에 사망했다. 어머니인 밀드레드는 도서관 사서였고 1990년에 별세했다. 1949년에 건축된 이 집은 교황의 아버지가 1996년에 5만8000달러에 매각했고 작년 주택 수리 후 판매하는 업자가 6만6000달러에 매입했다. 주방과 바닥은 새롭게 리모델링을 끝낸 것으로 나타난 이 집을 두고 시에서는 일단 교황에 거주했을 당시로 복원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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