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잠망경|‘프리미엄 끝판왕’ 아멕스 센츄리온 품은 현대카드 한국 최초 VVIP 카드 아멕스 센츄리온 단독 출시, 애플·코스트코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 일본 스미토모미쓰이 카드 등 해외 판매 성과
정태영(65) 현대카드 부회장은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CEO다. 그냥 성장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서사를 원한다. 금융업계에서 ‘현대카드스러움’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2003년 정 부회장이 회사를 맡은 이래 현대카드는 ‘브랜딩’에 목숨을 건 조직처럼 움직였다. 여기서의 브랜딩은 직관이 아니라 수학적 정합성에 근거해야 했다.
현대카드의 2024년 당기순이익은 3164억원으로 발표됐다. 전년 대비 19.4% 증가한 수치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증가했다. 특히 신용판매액(166조2687억원)에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현대카드 회원 숫자는 1225만 명에 달한다. 누군가는 카드업의 종말을 이야기했지만, 현대카드는 예외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상승 국면에서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스럽게 또다시 ‘가지 않는 길’을 모색 중이다. 양적 팽창이 아니라 하이엔드 카드와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이라는 두 개의 칼을 시장에 내민 것이다.
현대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이하 아멕스)와 2021년 11월부터 협업 관계를 시작했다. 아멕스 플래티넘·골드·그린 카드 등을 출시하며 신용을 쌓았다. 그리고 2025년 6월 아멕스 센츄리온을 출시했다. ‘아멕스 블랙’으로 불리는 아멕스 센츄리온의 국내 단독 발급은 현대카드가 처음이다. 최상위 VVIP 카드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멕스 센츄리온은 아시아권으로 한정하면 일본, 홍콩 등에서만 출시됐을 뿐이었다. 전 세계로 넓혀도 이 카드가 발급된 곳은 30여 국가에 불과하다. 아멕스 신용카드가 1984년 국내에 진출한 것을 고려하면 40년이 넘어서야 한국에 도입된 것이다.
아멕스가 특정 기업에 독점 라이선스를 부여해 발급하는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실제 삼성카드는 2008년부터 2023년까지 15년에 걸쳐 아멕스 센츄리온을 발급하지 못했다.
아멕스 센츄리온은 가입자를 몇 명이나 받을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해진 기준은 인비테이션을 발급해 선정된 극소수의 인원만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700만원의 가입비를 낼 수 있는 재력이 있다고 누구나 이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현대카드는 자사 프리미엄 카드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컬러에 따라 분류를 해놨는데, 그 정점에 위치한 카드가 ‘더 블랙’이다. 출시 당시 이 카드는 ‘대한민국 상위 0.05%’라는 9999장만 발급됐고, 〈오징어게임〉에서 착안한 456번 카드를 받은 배우 이정재가 정 부회장과 자리를 같이한 사진이 SNS에 퍼지며 입소문을 탔다. 블랙핑크 리사, 방탄소년단 진·정국, 배우 전지현 등도 더 블랙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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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톱티어 파트너십의 조건
이렇게 이미 프리미엄 카드를 보유한 현대카드이지만, 정 부회장은 굳이 ‘카드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아멕스 센츄리온의 독점 라이선스를 손에 넣었다. 현대카드를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줄기는 범접할 수 없는 고급화에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현대카드 더 블랙과 아멕스 센츄리온 카드의 핵심은 컨시어지 기능에 있다. 쉽게 설명하면 비서와 같은 서비스를 카드사가 제공하는 것이다. 아멕스 센츄리온 출시 초기만 해도 일각에선 ‘명성에 비해 혜택이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아멕스 센츄리온의 혜택은 약관으로 공개된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카드를 소유해 본 사람들의 평가다.
이로써 현대카드는 2023년 5월 아멕스 플래티넘·골드·그린 카드 독점 발급 이후 2년 만에 아멕스 센츄리온 카드를 출시하게 됐다. 아멕스가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상품 운용 능력과 브랜드 관리 역량을 신뢰하게 된 점이 결정적 이유로 보인다.
정 부회장 체제에서 현대카드는 글로벌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현대카드가 제시하는 조건은 업종 불문, 단독, 장기적 파트너십 이 세 가지로 축약된다. 아무리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춘 글로벌 회사라도 국내 다른 카드사와 협업하고 있다면, 제외된다.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가 한번 섭외한 아티스트를 다시 부르지 않는 것과 흡사한 기조다. 정 부회장이 숭배하는 애플의 방식처럼, 현대카드도 독자적 생태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서 관철된 글로벌 톱티어 파트너십으로는 아멕스 외에도 애플, 뉴욕타임스, 코스트코 PLCC, 디즈니플러스, MoMA(뉴욕현대미술관), VISA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아멕스 센츄리온, 애플페이, 코스트코, VISA와의 데이터 파트너십은 단독 혹은 최초의 사례다. 또 MoMA와는 20년 이상, GE와는 15년 이상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피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은 현대카드의 신용등급을 연이어 상향했다. 그 이유로 현대카드가 보유한 강력한 시장 지위를 꼽았다. 현대카드의 회원 수는 국내 카드사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신용판매 취급액 역시 성장 중이다. GPCC(범용 신용카드)와 PLCC(상업자 전용 신용카드)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온 비즈니스 모델에서 비롯된 상품 경쟁력 덕분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대카드의 역사를 떠받쳐온 근원이라 할 GPCC ‘현대카드M’은 단일 브랜드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스테디셀러다. 2003년 출시 후 누적 3500만 장이 발급됐고, ‘M포인트’는 대한민국 포인트 시스템의 표준이 됐다.
아울러 2015년 국내 최초 PLCC를 선보이며 정 부회장은 “이제 현대카드는 테크 회사”라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그 진의가 바로 와닿지 않았지만, 이후 현대카드는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PLCC’라는 구체적 방식을 구현했다. 실제 네이버를 비롯해 대한항공, 올리브영, 무신사, 현대·기아차, 제네시스, 이마트, GS칼텍스, SSG닷컴, 쏘카, 넥슨, 미래에셋증권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이 현대카드의 PLCC 파트너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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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로 파고드는 현대카드 PLCC
상품 경쟁력을 떠받치는 요인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현대카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이다. 실제 2023년 VISA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 BNP파리바, 크레디아그리콜(CA) 등 총 16개 프랑스 금융사 관계자들이 현대카드를 방문해 ‘금융사의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울 기회를 마련했다. 이어 2024년에는 라이언 맥이너니 VISA CEO를 비롯해 VISA 글로벌 임원진 10여 명과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조지아 등의 글로벌 금융사 최고 경영자들이 현대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사이언스 솔루션을 직접 보고 설명을 듣기 위해 현대카드를 찾았다.
특히 지난해 금융업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초개인화 AI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를 일본의 카드 빅3 회사인 스미토모미쓰이카드(SMCC)에 수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AI 소프트웨어의 글로벌 수출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만의 투명하고 직선적인 기업 문화와 글로벌한 협업 자세가 평가받은 증거”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 부회장의 네트워킹도 힘을 싣고 있다. 아멕스와의 파트너십에도 정 부회장과 모하메드 바디 아멕스 글로벌 네트워크 서비스 부문 사장과의 개인적 인연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