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본과 무역 협정을 마치고 다음날인 23일(현지시간) “미국 기업들은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장담한 것과 달리 미 산업계에서는 이번 협정이 ‘독’이 될 것 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동차 산업을 놓고 사실상 일본 기업에게 상대적 우위를 더하는 협상이 됐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트럼프의 대일 무역 협정이 ‘과도한 양보’라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협정이 미국의 무역 관계 재조정 및 국내 제조업 부흥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장 개방에 동의할 경우에만 관세를 인하하겠다.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 게시물과는 정반대인 미 산업계의 기류를 전하면서다.
미 산업계가 ‘협상 패배’나 다름없다고 본 분야는 자동차다. 미국은 이번 협정을 통해 지난 4월부터 해당 품목에 부과하던 추가 관세 25%를 절반인 12.5%로 낮췄다. 2.5% 기본 관세를 포함하면 15%다.
이와 관련, 맷 블런트 미국자동차정책위원회(AAPC) 위원장은 “미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북미 생산 차량보다 미국산 부품이 거의 없는 일본산 차량에 더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협정은 ‘나쁜 거래’”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멕시코·캐나다와 맺은 협정(USMCA)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자동차에 무관세를 적용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대로 향후 여기에도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역차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일본의 자동차 시장 개방 조치가 별다른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상당하다. 비관세 장벽으로 여겨지던 일본의 까다로운 자동차 안전 기준을 미국 기준으로 완화한다는 합의가 대표적이다.
애초 일본 소비자가 연비가 낮고 대형차 중심인 미국산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기준 맞추기로 시장의 수요가 늘겠느냐는 관측이다. 실제 미국이 일본에 자동차 1대를 팔 때 일본은 미국에 84대를 팔고 있다.
자동차 무역 격차의 본질이 비관세 장벽 철폐가 아닌 선호도에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블룸버그가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이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결정을 디트로이트에 대한 승리로 포장했다”고 꼬집은 이유다. 미국산 자동차의 일본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일본 업체의 판매망을 활용하게 하는 방안 역시 시장 개방 조치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미 자동차 업계는 비슷한 이유로 회의적이다.
급기야 미 산업계에선 국내 산업 보호가 이번 협정의 주된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시각까지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일 협정이 투자에 중점을 둔 건 제조업 보호보다 일단은 추가 수익 확보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미·일 간 무역 적자의 약 80%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서 발생함에도 이 분야 관세 혜택을 일본에게 안겨주고, 대규모 군사장비 구매와 5500억 달러(약 760조원) 투자 확보에 집중했다는 건 이런 의견을 뒷받침한다.
이번 협정 직후 일본 자동차 업계의 수혜를 예상한 금융 시장은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관세 인하가 이뤄지면 일본 7개 완성차 업계의 관세 부담이 1조6000억 엔(약 15조4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전날(23일) 일본 증시에서 도요타, 혼다의 주가는 각각 14.3%, 11.2% 급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