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여름이 되면 찾아오는 것이 하나 있다. 여름 선물(お中元)이다. 평소 신세 지고 고마웠던 사람에게 과자나 과일, 맥주 같은 선물을 전달하는 것인데, 이 시장이 크다 보니 백화점들은 앞다퉈 두툼한 선물 홍보 책자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엔 여름 선물을 안 하는 곳이 늘어 덜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소한 선물과 답례 편지들이 오간다.
인터뷰를 하나 하더라도 빈손으로 찾아가는 것이 결례이기에 선물을 사러 가는 일이 잦은데, 이방인 입장에선 고민스러운 상황에 부딪히곤 한다. 작은 쌀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좀 과장해 말하자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해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우선 선물을 고르고 나면 이런 질문이 줄줄이다. “선물하실 건가요?” “노시가미(のし紙) 할까요?” “노시가미는 어떤 걸 할까요?” (통상 노시가미는 포장한 선물 위에 덧대는데 축하나 인사, 답례처럼 어떤 의미의 선물인지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값을 치르기 전에 한 번 더 묻는다. “전달용 종이 가방이 필요한가요?” 선물을 전할 때 행여 종이 가방 손잡이가 너덜너덜해져 머쓱하지 않도록 ‘새 가방’이 하나 더 필요하냐는 의미다. 비가 오는 날엔 이 과정이 하나 더 붙는다. 종이백 위에 투명 비닐을 덧씌울지를 묻는데, 최근엔 덧댄 노시가미가 망가질까 봐 선물을 비닐로 한겹 싸겠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장황했지만 요지는 이렇다. 일본은 상대방을 생각해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있는 세밀함’은 일본 곳곳에 있다. 사무실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인부들은 문 앞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가 공사를 한다. 뿐만인가. 인사철이 되면 정중한 인사를 담은 엽서가 날아온다. 일회용 젓가락 봉투 안엔 이쑤시개가 들어있고, 통에 담긴 껌엔 작은 종이뭉치가 들어있다. 씹던 껌을 싸 버리란 거다.
최근 사무실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징용공 출신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1988년 일본과 첫 운명적 만남을 가진 이래, 여섯 차례 18년 동안의 일본 근무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엄청난 혜택이었고 개인적으로 더 이상 없는 행운입니다.” 김옥채 요코하마 총영사의 작별 편지다. 새 정권이 들어서며 내려진 ‘2주 내 귀임’ 통보에 대사를 비롯한 특임 공관장들은 벼락같이 짐을 쌌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가 귀임한 지 약 2주. 새 대사 소식은 감감하다.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까지 생각하면 앞으로 족히 두어 달은 대사관이 빈다. 외교는 상대를 보고 하는 것인데, 우리도 좀 ‘이유 있는 세밀함’을 갖췄더라면 어땠을까. 새 정부 기치가 ‘실용주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