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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발등의 불’ 된 한·미동맹 재조정…한국의 안보 역할 인식시켜야

중앙일보

2025.07.24 08:16 2025.07.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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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니어 재단 부이사장·전 주일 대사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그제(23일)로 50일을 넘겼다. 새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외교의 기축인 한·미 동맹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우선을 앞세운 트럼프주의는 ‘동맹 스트레스’지만, 이를 극복하고 상황에 맞게 동맹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우리의 전략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 급부상하는 중국 견제 위해
각지 분산 전력 조합해 대응 시도
한·미 군사동맹 변화 가능성 제기
인·태 지역 내 한국 중요도 알려야

당장의 현안은 막바지에 있는 관세 협상의 타결이다. 지난해 한국은 557억 달러(약 76조2300억원)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전체 무역 수지(518억 달러, 약 70조8900억원)를 웃돌 만큼 미국 시장은 우리에게 절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개하고 있는 관세 전쟁의 여파를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관세보다 시급한 안보 현안
하지만 통상 못지않게 중요한 건 우리의 사활이 걸려 있는 안보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6개월 동안 관심을 기울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종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동 지역은 이란의 대리 세력인 ‘저항의 축’이 무력화되고, 이란 핵시설 폭격으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제 최대 전략 경쟁 상대로 지목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 즉 아시아의 동맹 체제 변화를 통한 중국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국제 질서의 변화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패권을 행사했던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중국이 이에 도전하고 나선 데 기인한다. 지난 80년 동안 작동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미국이 이를 유지하려는 부담을 회피하면서 구심력이 떨어졌다. 반면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이 흔드는 원심력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는 동맹국과 적대세력 모두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무임승차했고, 미국이 경제와 안보에서 희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국은 동맹국들에도 무차별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국방비 증액과 주한 미군의 주둔경비(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한다. 미국의 해외 개입을 억제하고 본토 방위, 서반구 안보 및 대중 전략 대결에 치중하면서 동맹국 방위는 각 나라들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중 전략 경쟁에 역점을 두는 건 빠르게 증강하는 중국 군사력의 위협 때문이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해·공군력을 배제하려는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 Area Denial·A2AD) 전략에 맞서고 있다. 동시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전장 상황에 따라 자신들이 각지에 보유한 전략을 조합해 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자이크 전(Mosaic Warfare)’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리적 약점의 극복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18일 도쿄에서 열린 한·미 외교차관 회의에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확대 적용하는 등의 ‘동맹 현대화’를 주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때문에 미국이 대중 전략 경쟁에 한국을 끌어들이면서도, 한반도의 중요성을 낮춰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전력 규모와 배치에 대한 재검토가 우리의 뜻과 달리 이뤄질 가능성이 큰 만큼 한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대만·한반도 동시 충돌 상황 대비해야
우선 우리의 시선을 한반도 넘어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지역으로 넓혀야 한다.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과 기여를 부각해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정책에서 한국이 중요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미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우리 능력 범위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통합 억지에 기여하는 존재임을 보여줘야 한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강화와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태 지역의 파트너 간 협력 심화, 해로 유지에 적극적인 참여, 사이버 방위협력 주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노력은 최근 일본이 제안한 서태평양 ‘단일 전구(戰區, one theater)’, ‘단일 협력 노력(OCEAN)’ 구상 등에 대한 대응 차원이기도 하다.

또 대만 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는 것도 과제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최선이지만 ‘유엔 헌장을 위반한 무력 공격’에 대해서는 한국이 인·태 지역의 주요 국가로서 응분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역할을 주문할 명분이 생기는 시대가 됐다. 동시에 중국과 대만이 충돌한다면 북한이 군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미국의 확장 억지와 정보 제공 등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을 의미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필요하다. 전략적 유연성은 노무현 정부 때 제기돼 2006년 1월 양국 외교장관 공동성명으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하되 동북아지역 분쟁에는 한국 의사를 존중하는’ 선에서 정리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존 합의에 연연하지 않고 있고, 지난 5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한국은 일본과 중국 간 섬 또는 고정된 항공모함과 같아 주한미군이 ‘거리의 횡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대북 억제에 전념했던 주한 미군을 유사시 해외로 차출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감축 등에 대해선 최근 미 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미·중 전략 대결 심화에 따라 미국이 대중 견제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 분위기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

19세기 말 미국에 세계 1위 대국의 자리를 내준 영국은 축소된 국력으로 제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반구에선 미국과, 동아시아에선 일본과 동맹을 맺는 정책을 폈다. 독일의 부상과 러시아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현재 미국의 입장이 이와 유사하다. 미국이 동맹국에 대해 경제·안보 압박을 하고 있지만, 동맹국의 협조 없이는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한계가 있다. 어쩌면 한·미 동맹이 우리의 전략 자산인 셈이다. 긴 안목으로 한·미동맹을 관리하면서 일본, 호주, 유럽 등과 함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유지에 힘을 모아 간다면 혼돈의 과도기 국제 정세에서 우리 국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신각수 니어재단 부이사장·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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