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지난 20일 참의원 선거에서 쓴잔을 마셨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 참패에 이어 참의원 절반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도 참패해 과반 의석 달성에 실패했다. 연정을 꾸려온 자민당과 공명당은 과반 확보를 위한 50석에서 3석이 모자란 47석 확보에 그쳤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극우 세력인 참정당이 14석(비례 포함)을 거뒀다.
관세·고물가·이민이 악재로 작용
군국주의 동경하는 참정당 약진
관세 전쟁 끝내고 안보 강화해야
독일과 동유럽에서 반(反) 외국인 정책에 기반을 둔 정치 세력이 약진하고, 미국에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부상하는 가운데 일본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영국과 호주처럼 한국은 최근 대선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정부를 선출하며 이런 추세에서 한 발짝 비켜섰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이념적으로 고립될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존재한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트럼프 2기 정부가 제시한 25% 관세(선거 직후 15%로 합의), 고물가, 그리고 이민 문제였다. 이시바 총리는 임기 초기부터 트럼프와 회담했지만, 선거 정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이 많지 않았다. 이시바는 인플레이션 문제에서도 진퇴양난에 놓여 있었다.
이민 정책에서도 이시바는 딜레마에 빠졌다. 인구 감소로 일본 기업은 특히 저임금 산업인 소매와 건설업을 중심으로 외국인 인력에 크게 의존해왔다. 고물가와 관세 문제로 유권자들의 경제 불안감이 증폭되자 이민 정책에 부정적 보도가 쏟아졌다. 일본은 오른쪽으로 기운 것일까. ‘일본인 퍼스트’를 내걸고 백신 반대론과 반(反)이민 정책, 세계대전 이전 일본 군국주의 세상을 동경하는 온라인 우익 세력인 ‘넷 우익(netto-uyoku)’ 세력에 기반을 둔 참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약진했다.
이들 세력은 기득권에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 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중의원보다는 힘이 약한 참의원에서 참정당의 의석수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자민당이 일본 국회에서 소수정당과 연립을 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지만 참정당은 연립에 들어갈 수 없기에 정책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가능성은 작다.
이제 누가 이시바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를 대체할 후보 중 한 명은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와 경쟁했던 정치인으로 극우 중의 극우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있다. 만약 그녀가 차기 자민당 총재가 된다면 이야말로 일본 우경화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시바가 총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자민당의 대다수가 다카이치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이웃 국가에 대한 위험한 언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참정당이 가져간 의석도 당초 자민당 내부의 보수 인사들의 지역구였다. 따라서 자민당에 남은 보수 의원 수도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농림장관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농림상이나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중의원 의원(전 경제산업상) 같은 젊은 정치인에게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각을 갖고 미·일 동맹과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가 강하다.
일본의 우경화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아시아 안정을 위한 좋은 정책을 낼 수 있는 일본 정부의 역량이다. 이시바는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면 미·일 동맹의 통합 억제력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중국의 반대편에서 아시아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일본 경제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 국민 여론은 90% 이상이 미·일 동맹을 지지한다. 트럼프의 고집스러운 관세 정책만 아니었어도 이시바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제조업체들에 쓴 약인 15% 관세를 삼켜야 했는데 이는 미국 경제에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관세 전쟁은 끝내는 것이 좋다.
미국 의회와 여론은 강력한 미·일 동맹을 지지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대중국 전략도 일본의 도움 없이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선거에 참패한 이시바가 사퇴하면 30년 만에 가장 격렬했던 미·일 마찰이 종식되고 미·일은 안보 증진에 집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