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재명 정부 첫 내각 인사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이라고 생각한다. 최동석이란 이름은 2021년 처음 접했다.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를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임명하자 정치권에서 ‘보은 인사’ 논란이 벌어졌다. 그때 최 처장(당시 인사조직연구소장)이 “인사는 코드 인사해야 한다”며 이 지사를 적극적으로 두둔했던 것이다.
“문재인과 주변인사 심판 내려야”
‘비명횡사’ 공천 이론적 배경 제공
조카 김용민은 “자질 없다” 맹비난
당시엔 흔한 좌파 유튜버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정부 요직을 맡는다니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봤다. 잠깐 사이에 화려한 어록이 수두룩 쌓였다. 이 대통령이 왜 최 처장을 발탁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최 처장은 이 대통령과 ‘개딸’에 꼭 필요한 논리와 명분을 제공하는 이데올로그(ideologue)였던 것이다.
좌파 진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플루언서는 많다. 하지만 김어준씨는 지식인층에선 한계가 뚜렷하고, 유시민 전 의원은 친노ㆍ친문 진영과도 관계가 깊다. 이에 비해 최 처장은 독일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 출신인 데다 무엇보다 드물게 이 대통령에게만 배타적으로 충성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최 처장은 2022년 7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린 글에서 “이낙연과 윤석열을 임용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이끈 책임은 궁극적으로 문재인에게 있다. 문재인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말과 행동이 다른 양아치들의 집단”이라며 “어떤 매력적인 비전도, 전략도, 능력도 없는 늙은이들이 정치판을 휘젓고 있다. 이제 이들 모두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차례 “문재인 자신과 이낙연,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고위 공직자들에게 상응하는 정치적ㆍ사회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 처장의 이런 주장은 2024년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친문계를 대거 숙청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에 훌륭한 이론적 배경이 됐을 것이다.
‘비상계엄 옹호’ 논란을 일으킨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은 논란 이틀 만에 물러났다. 강 전 비서관의 과거 주장을 이 대통령이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최 처장은 민주당 내 친문계의 반발(윤건영 의원 “화가 많이 난다”)에도 끄떡없다. 이 대통령이 최 처장의 주장에 사실상 ‘좋아요’를 눌렀다는 의미 아니면 뭐겠나.
최 처장은 2021년 조카인 김용민(나꼼수 출신)씨 유튜브에 출연해 이재명 지사의 ‘형수 욕설’ 논란에 대해 “형님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체계와 이재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민주적 가치체계가 집안에서 부딪힌 것”이라며 “(이 지사가) 후회하고 성숙해가는 상황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이 정도면 해당 논란에 대한 최고급 포장이다. 하이데거까지 등장하는 철학적 승화라니 얼마나 쌈박한가. 이런 능력이 있어야 대통령 눈에 띄는 모양이다.
그런데 최 처장과 김용민씨 사이가 최근 틀어졌다. 김씨는 얼마 전 유튜브에서 “최 처장과 의절한 지 좀 됐다”며 “이분이 이재명 정부에서 인사 책임자로서 역할을 맡을 만한 소양과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벌주의를 싫어한다지만 실은 학벌만 보는 분”이라고 맹비난했다. 두 사람이 연루된 송사(訟事) 때문에 원수지간이 된 듯하다. 조카가 외삼촌을 공격하는 건 들뢰즈의 ‘욕망’으로 조망하면 되려나.
최 처장은 글 곳곳에서 굉장히 강한 개성과 독특한 주관을 드러냈지만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의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논란에 대해 “저희 집이 TVㆍ신문을 안 본다”며 답변을 얼버무렸다. 왜 소신껏 “문재인 정부처럼 멍청한 인사 기준은 필요 없다”고 밝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아직 몸이 덜 풀려서일까. 하여튼 앞으로 인사혁신처를 주목하자.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