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 17일 취임했다. 국회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야당의 특별한 반대 없이 채택되자 대통령이 바로 재가하여 이재명 정부가 임명한 최초의 장관이 되었다. 사실 과학기술계 일부에서는 과기정통부 장관과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대통령실 수석(AI미래기획수석)이 모두 인공지능(AI) 분야의 전문가여서 다른 과학기술 분야는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또한 민간기업 출신이라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지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AI 개발이 국가의 중요한 과제인 터라 당분간 국정의 힘을 그쪽으로 집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공공 연구개발의 효율성이 항상 문제 됐으므로 민간기업의 경험을 국정에 접목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민간기업 경험 국정에 접목 기대
AI 발전 외 과학계도 관심 쏟아야
풀뿌리 기초연구 지원 회복하고
선진국형 연구지원 체계 도입을
새로운 과기정통부 장관의 최우선 과제는 물론 한국을 AI 강국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대표 국정과제이기도 하고, 앞으로 AI의 파급력은 산업과 경제는 물론 사회와 일상생활까지 크게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미국을 100으로 보았을 때, 2위 중국 53.9점에도 크게 뒤떨어지는 27.3점으로 세계 6위로 평가된다(영국 토터스미디어 ‘2024 AI 인덱스’). 디지털 산업에서는 대부분 승자 독식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3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우수한 제조업 경쟁력을 활용한 ‘피지컬 AI’에 특화하는 식의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AI 이외에도 한국의 과학기술을 책임지는 배 장관이 감당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우선 지난 정부의 뜬금없는 연구개발 예산의 삭감으로 인한 연구 현장의 피해를 속히 복구해야 한다. ‘나누어먹기식 R&D 카르텔’이 문제라는 이유로 2024년도 대학의 기초연구비 등을 대폭 삭감하자 연구자들은 크게 동요하였고, 심지어 “장래 연구자로서의 직업 안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진로를 바꾸는 이공계 대학원생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윤석열 정부는 뒤늦게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직을 신설하고 2025년도 연구개발 예산 총액을 원래 수준으로 복원시켰으나, 대학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풀뿌리 연구자 생애주기형 기초연구비는 회복되지 못하였다. 다행히 배경훈 장관은 취임사에서 “폐지된 풀뿌리형 기본 연구를 복원하여 연구안전망을 확충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으니, 문제점은 잘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 예산은 주무부처 장관의 소신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 당국의 동의도 받아야 하니 설득력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국가 R&D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세계에서 높은 수준이지만, 이에 상응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인터넷, GPS, 드론, 자율주행 등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기술들을 많이 개발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이처럼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의 R&D 지원 시스템이 아직도 ‘선진국 따라가기 (Fast Follower)’ 시대의 관성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을 따라가거나 조금 개량하는 것은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여기에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한국 특유의 관료주의가 작용하면서 연구개발에서도 성공할 만한 과제만 신청하고 선정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 문턱에 선 우리나라는 인류 최초의 제품을 만들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실패할 확률도 높다. 과연 새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정책감사 등으로 보신주의에 빠진 공무원들을 독려해 과감히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선진국형 (First Mover) 연구지원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부디 민간기업에서의 경험이 도움되기를 바란다.
셋째는 과학기술 인력의 사기를 진작하는 일이다. IMF 사태 이후의 이공계 기피 현상과 최근의 의대 쏠림 현상 등으로 이공계를 선택하는 우리나라 인재들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에서 교육받았거나 정착했던 인재들마저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직업 안정성이나 평생 수입 등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겠지만, 과학기술자에 대한 빈약한 사회적 대우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우수한 연구자에게는 정년을 없앤다든지, 중국처럼 국가 영웅으로 대접하는 제도를 만들든지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전부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물꼬를 틀 수는 있을 것이다. 새 과기정통부 장관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