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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번 돈, 부모가 다 써버렸다…한국형 쿠건법 도입할 때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중앙일보

2025.07.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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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드'.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현재 한국 대중문화산업에서 미성년 연예인의 존재감은 무척 크다. K팝을 선도하는 아이돌 그룹은 10대 중반이면 데뷔조에 들고, ‘파친코’(애플티비)나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처럼 일대기적 성격의 드라마에서는 작품 초반 아역배우가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성년 연예인이라도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 엄청난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최근에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그러나 연예활동을 부모나 소속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성년 연예인의 권리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청소년 연예인 관련 금지행위를 정하고 건강과 학습권, 휴식권 등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효적인 보호수단으로 기능하기는 어렵다. 최근 대중문화예술사업자로 하여금 ‘청소년보호책임자’를 지정하여 기본적 인권 보장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등 제도적 개선도 계속되고 있지만, 법적 보호의 핵심은 미성년 연예인의 노력으로 벌어 들인 수익이 그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때문에 쿠건법(Coogan Act) 도입 논의가 주목 받고 있다.

1930년대 영화 ‘키드’ 출연 이후 성공한 아역배우였던 재키 쿠건(Jackie Coogan)은 막대한 수입을 올렸지만, 그의 어머니가 대부분의 수입을 탕진했다. 그가 성인이 된 후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부분 돌려받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미성년 연예인의 수입 일부를 본인 명의로 개설된 신탁계좌에 강제로 적립하도록 하는 법이 제정됐고, 현재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는 미성년 연예인 총 수입의 15% 또는 그 이상을 신탁계좌에 예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8대 국회부터 유사한 법안이 계속 발의됐지만, 부모가 아역배우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등 가족 공동의 노력으로 얻은 수입인데 과도한 간섭을 한다는 비판 등에 부딪혀 입법화되지 못했다.
에능에 출연해 ″엄마가 진 억대 빚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던 장윤정. 사진 SBS 힐링캠프

하지만 재키 쿠건 사례가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연예인 수입은 통상의 근로소득보다 훨씬 고액인 경우가 많고, 민법상 미성년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 권한은 친권자에게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이익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쉽지 않다. 장윤정, 박수홍, 박세리의 사례에서 보듯 부모가 자녀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재산을 관리한다는 보장도 없고, 실제로 연예인들이 인기 있던 시절 번 돈을 부모의 빚을 갚거나 부모가 생활비 등으로 소진하여 현재는 어렵게 살고 있다는 고백이 방송 소재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성년 연예인 재산 전체의 처분을, 온전히 부모의 선의에만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고민 끝에 현재 국회에는 미성년 연예인 재산에 관한 신탁제도 도입을 위한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다. 곽상언, 민형배 의원안은 보수의 15% 이상을, 배현진 의원안은 보수의 50% 이상을 예치하도록 하는 등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명의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원칙적으로 예치금을 인출할 수 없고,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두는 등 공통점도 많다. 이런 제도가 도입된다면, 미성년 연예인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제작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범죄경력 조회 제도의 도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형실효법은 전과자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위해 범죄 경력을 조회할 수 있는 경우를 제한하고 있고,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성범죄 경력 조회를 거쳐 취업이 제한되는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콘텐트 제작사 등 대중문화예술제작업자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는 촬영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수많은 인력이 단기로 고용되거나 위탁받아 업무를 수행하므로, 일일이 성범죄 경력 조회를 하도록 하는 것은 제작사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감정보 보호와 미성년 연예인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미성년 연예인이 촬영하는 현장에서 그들과 직접 대면하는 성인 스태프나 출연자 등에 대해서는 성범죄 경력 조회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 연예인의 미래는 ‘현재’를 제대로 보장 받을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신이 벌어들인 수익이 온전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촬영 현장은 치명적인 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 Law 이슈]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황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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