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증세 논의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서 낮췄던 법인세율을 다시 높이는 원상복구를 추진하는 가운데 민주당이 25일 조세제도개편특별위원회 설치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정부가 내놓을 세제 개편안에는 당정이 조율한 증세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김병기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 재정이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아끼고 줄인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세수 파탄 때문에 국가의 정상적 운영도,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위를 중심으로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권에선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24%→25%) 인상 ▶대주주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50억원→10억원) 강화 ▶증권거래세율(0.15%→0.18%) 인상 등 증세안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은 당내 의견 수렴을 거쳐 다음주 정부와 사전 의견교환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후 정기국회에서 세법 개정안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당정은 그러면서도 ‘증세’라는 표현은 거부하고 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증세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 이전 재정 규모를 유지하자는 것”이라며 “국가의 곳간이 비어 있는데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면 부자 감세로 인해 펑크난 재정을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법인세와 관련해 ‘증세’ 대신 ‘조세 정상화’라는 표현을 썼던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이날 “조세의 형평성을 복원하고, 조세를 정상화한다는 의미에서 조세 정상화라는 표현을 썼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흐트러진 균형과 평균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고, 그걸 조세 정상화라고 표현했다”고 부연했다.
당정이 증세 방향엔 공감하고 있지만 개별 항목에 대해선 이견도 드러내고 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대표적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주식 배당소득세제 개편은 신중해야 한다”고 적었다. “2023년도 기준, 상위 0.1%인 1만7464명이 전체 배당소득의 45.9%(13조8842억원)를 가져간다. 섬세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극소수 주식 재벌들만 혜택을 받는다. 과연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행 소득세법은 배당·이자 등 금융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일 때만 15.4% 세율로 분리 과세한다. 2000만원이 넘어가면 다른 소득(사업·근로·연금·기타)과 합산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돼 최고 49.5%의 누진세율(지방소득세 포함)을 적용받는다. 이미 다른 소득이 있는 사람이 배당소득을 노리고 주식에 큰 돈을 투자하긴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여당 일각에선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는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자본시장 관련 제도 개선은 신성장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개인 투자자의 소득이 함께 증대되는 양면의 효과가 있다”며 “배당소득세제 개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 의장처럼 “땀·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재선 의원)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민주당은 이같은 이견도 특위를 통해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박상혁 수석대변인은 최고위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개별 의원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며 “당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내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발 증세 드라이브에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인과 개인이 열심히 활동하는데 세금을 많이 과세하면 다른 나라 기업이나 개인보다 위축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여야 합의로 인하된 세율을 다시 올린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 위원장은 그러면서 “재작년 법인세를 1%포인트 내리기로 여야가 합의해 세율을 조정했다”며 “정상적 의회 활동을 통해 여야 합의로 이뤄진 세율 조정에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건 국회에 대한 도전이자 모독”이라고 했다. 이어 “세율을 인상하는 걸 조세 정상화라 강변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며 “세수 부족에 정부가 고민하는 건 이해하지만, 재고하길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