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동생은 꽤나 번화한 지역의 고층 오피스텔에 살았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나 있어 작업하기엔 편했지만 좀 놀랐다.
상가가 3층까지 채워졌고, 그 위론 사무실, 그리고 더 고층은 주거공간.
살기 편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동생은 죽었다.
밑에 층에서 만난 언니는 40대 후반. 여동생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고인은 마흔살.
위아래로 꽤 터울이 나는 세 자매였다.
현장은 12층이었다.
현관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서둘러 뜯어내고 조용히 들어갔다.
안에는 매캐한 탄내가 아직도 가득했다.
화장실에서 연기와 함께 떠났다.
장례는 하루만에 끝내고 곧장 화장을 했다.
그녀가 태운 재처럼 그 역시 하얀 재가 됐다.
…
고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고인은 지방 변두리 출신이었다.
형편이 좋은 가정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내내 맞벌이를 해야 먹고살 수 있었다.
언니는 언니라서 대우 받고, 동생은 막내라서 귀여움을 받았다.
둘째는 중간에 끼어 가족 안에서도 겉돌았다.
“그래도 둘째는 독한 구석이 있었어요.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중학교에 가면서 악착같이 공부를 하더라고요.
머리가 좋아서, 형편이 좋아서 잘한 게 아니었어요.
어린애가 뭔가 한이라도 맺힌 듯 책만 봤다니까요.”
언니는 그때는 몰랐다고 했다.
그게 동생이 가족 모르게 예약한 서울행 티켓이었다는 것을.
고등학생이 돼선 알바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그 동네에선 드물게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다.
가족들은 기뻐하기보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얘가 아무 도움도 없이 어떻게 이 정도까지…’
같이 살지만 사실 남처럼 지낸 가족이었다.
독서실이나 기숙사처럼 둘째는 집에서 공부만 했다.
가족들은 그녀의 명문대 진학을 축하하거나 기뻐할 자격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오로지 둘째 혼자 이뤄낸 성취.
그리고 그 가족, 변두리 시골로부터 당당하게 ‘탈출’했다.
그 뒤론 드문드문 연락 정도나 하고 살아왔단다.
가족과 싸웠다거나 인연을 끊었다든가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가족의 세계가 싫었고, 남은 가족은 그녀의 새로운 세계가 낯설었다.
1년에 두어번 정도의 전화.
2~3년에 한번쯤의 만남.
그것도 거의 언니가 연락하는 정도였다.
둘째는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곤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줄 알았더니 뒤늦게 남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네가 잘사는 집안이었나 봐요. 결혼도 한다길래 그냥 잘 된 줄 알았죠. 혼수 준비하려니 또 돈이 문제다…,
그러면서 투자 이야기도 하던데 저는 뭐 모르는 소리라서…”
언니는 그냥 둘째를 부러워만 했지 무슨 큰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단다.
힘들게 공부하고 어렵게 일하느라 연애도 못해본 동생.
그 아이가 늦게나마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한다니, 모든 게 자신은 맞지 못한 ‘해피엔딩’이라고 축하만 했을 뿐.
고인의 집은 잘 꾸며져 있었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고, 갖춰둔 가구나 살림살이가 남부럽지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여러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그 중엔 오피스텔 전세 계약서도 있었다.
좋은 곳이다보니 수억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