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법령 개정으로 보고서 작성 업무가 늘어난 소방관리사의 사망에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소방관리사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공단은 유족급여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사망한 김씨는 2018년 1월부터 한 소방관리업체에서 소방관리사로 근무하면서 소방시설 점검 업무 등을 맡았다. 그러던 2021년 4월 17일 자택에서 갑자기 사망한 채로 발견됐는데, 직접 사인은 미상이었다. 부검의는 “심장에서 경도의 심비대 및 심근세포비후 등의 소견을 보는 이외에 사인과 연관지을만한 소견을 보지 못한다”며 급성심장사로 추정했다.
김씨 아내는 김씨 사망 직전 업무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고 보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하지만 2022년 12월 공단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부(不)지급 결정했다. 이에 김씨 아내가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 소송에 이르게 됐다.
법원은 공단과 달리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사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 업무인 ‘소방시설 등 작동기능점검 결과 보고서’ 작성의 근거 규정인 소방시설법 시행규칙이 김씨 사망 직전인 2021년 4월 1일 개정된 점에 주목했다. 개정에 따라 점검항목과 작성항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씨 사업장 사업주가 “법 개정으로 서류 자체가 바뀌어서 기존 양식을 사용하지 못하고 새롭게 작성해야 했다. 모든 직원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됐다”고 진술한 점을 인용해 “김씨는 법령 변화에 유의하면서 숙달되지 않은 양식으로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기존보다 높은 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의가 “4월 법 개정으로 소방시설 집중 점검이 있었고 신규 보고서 양식 도입에 따른 업무 가중이 있었다면 그에 따른 정신적 부담 또한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낸 것을 언급하며 “유의미할 정도로 업무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 김씨가 사망한 날은 소방시설 점검 4일차이자 토요일이었는데, 바로 전날 김씨가 사업주에게 “토요일엔 일을 잡지 말라”며 불만을 표한 점도 고려됐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급성심장질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감정의 소견을 바탕으로 재판부는 “사망 전날 업무상 이유로 사업주와 격한 언쟁을 한 것이 발병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밖에 김씨 사망 직전 동료 2명의 퇴사로 업무 부담이 는 점, 평소 야근과 출장이 잦았던 점, 출장 현장에서 건물 소유주·관리인과 종종 분쟁에 휘말렸던 점도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요소로 언급하며 “김씨 사망은 업무적인 요인으로 발병한 것이거나, 적어도 업무적인 요인이 다른 기저 요인과 경합하여 영향을 준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