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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이주민의 문화적 공헌

중앙일보

2025.07.27 08:12 2025.07.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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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최근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묶어 괴롭히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공개되며,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주변화되기 쉬운 이주노동자들이 문화의 흐름을 바꾼 사례도 꽤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대 아테네의 메틱(metic)들이다. 성인 남성 시민의 절반에 가까웠던 메틱들은 외국에서 온 자유민으로, 시민권 없이 장인·상인·지식인 등으로 활동하며 도시의 경제적·문화적 생명력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분야가 바로 도자기 회화였다.

고대 리디아(터키 서해안) 출신의 도공 리도스(Lydos)는 아테네 흑도기 회화의 초기 서사적 장면 구성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기원전 6세기 초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자신들의 작업이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예술적 가치와 시장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태생으로 추정되는 아마시스 화가(Amasis Painter)는 그리스 도기화의 양식과 주제를 혁신적으로 바꿨다. 특히 인물 묘사와 구성에서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실험적이고도 섬세한 작품을 남겼다. 장르적인 장면(genre scene)을 서양 회화에 도입한 인물이 바로 아마시스 화가라고 봐도 된다. 여성들이 양털을 손질하고 짜는 일상의 한순간을 서정적으로 포착한 그의 작품에서는 새로운 시각적 언어가 싹트고 있다(사진).

한편 동시대 그리스 사람인 엑세키아스(Exekias)는 주로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화가였지만, 아프리카계 인물로 보이는 형상 옆에 ‘아마소스’라는 이름을 새겨 넣어 자기 동료를 풍자하기도 했다. 이들은 외부인이 아니라 사회적·예술적 혁신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오늘날 이들의 아름다운 도기를 박물관에서 감상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문화적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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