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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수행평가·세특, 이대론 안 된다 [김성탁의 시선]

중앙일보

2025.07.27 08:16 2025.07.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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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논설위원
‘선의로 포장돼 지옥으로 가는 길, 탁상공론의 대표 사례 고교 수행평가입니다. 청원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 온라인 입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최근 고교생 학부모들이 학교 수행평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교육 관련 유튜버 강성태씨가 올린 수행평가 전면 재검토 청원에 참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교 시험 준비도 버거운데 수행평가 부담이 커 아이들이 잠도 못 잔다는 하소연이다.

2026학년도 대입수시설명회 설명회가 열린 부산디자인진흥원 대강당에서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송봉근 기자
수행평가는 암기 위주인 지필 평가의 한계를 보완하고 사고 능력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고교에서 과제를 내주거나 보고서 발표 형태의 수행평가를 주로 운영하다 보니 내신 준비하랴 학원 다니랴 바쁜 수험생들이 쫓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자료를 준비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대책을 발표하고 중·고교 수행평가의 경우 2학기부터 반드시 수업시간 내에 실시하도록 했다. 부모의 도움 등 외부 요인이 개입될 가능성이 큰 과제형이나 과도한 준비가 필요한 암기식 수행평가는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치러지는 2026학년도 대입은 수시모집 비중이 79.9%로, 역대 최고치다. 정시모집은 대학수학능력평가 위주이지만 수시는 학교생활기록부가 주 평가 대상이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 대학의 경우 내신 성적을 주로 보는 학생부교과전형보다 내신 성적에 더해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크다. 상위권대를 가려면 생기부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비교과는 생기부에서 ‘세특’으로 불리는 세부능력·특기사항이 대표적이다. 수행평가는 세특에 쓸 거리로 활용된다. 과목별로 학생들이 보고서를 발표하면 세특에 적어주는 식이다. 세특이 500자 분량이어서 ‘500자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전쟁을 둘러싸고 입시 현장에서 갖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수행평가 폐지 청원 학부모 동참
6개월 400만원 세특 컨설팅까지
내신·생기부·수능 다 챙기라니…

상당수 교사는 제자들의 세특이 수시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느라 업무가 과도하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보고서 등 발표 기회를 주면서 학생이 500자 분량을 따로 정리해 내도록 주문하는 교사도 많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내용을 세특에 고스란히 반영해주기 위한 목적인데, 이러다 보니 바쁜 수험생 대신 나서는 부모들이 있다. 교과나 진로에 맞춰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수나 전문직 종사자 부모라면 몰라도 대다수는 대리 작성 자체가 버겁다.

이런 틈을 사교육 업체가 파고든다. 생기부 세특 준비를 위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 입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지방 일반고 고1인데, 생기부 장기 관리받는 비용이 6개월에 400만원이라고 한다”며 “2회 상담, 보고서 수행평가 등 10회 과제 도와주고 질문 응답은 무제한이라는데 하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고교 3학년 1학기까지 컨설팅을 받을 경우 2000만원이 드는 셈이다. 대치동 등 학원가에는 학생부 컨설팅으로 낮은 내신 성적을 극복하고 상위권 대학에 합격시켰다고 광고하는 업체가 많다.

하지만 실제 대입에서 내신성적 외에 세특 등 생기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는 불명확하다. 서울 최상위권대에서 학과장을 맡은 교수에게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생기부 내용을 얼마나 반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생기부를 보긴 하지만 사실 특별히 돋보이는 내용이 담긴 학생은 많지 않더라. 그래서 결국 내신 성적 숫자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생과 학부모는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실제 수시모집에서 어떤 항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이런 와중에 비교적 뚜렷한 경향성은 대학들이 교과 과정이 특이해 생기부에서 표가 나는 과학영재고나 특목고, 전국단위 자사고 등을 우대한다는 점이다.

9등급제였던 고교 내신은 현재 고1부터 5등급제로 바뀌었다. 1등급 구간의 확대로 전 과목 1등급을 받는 학생 수가 6000명이 넘어 내신만으로 의대 진학이 불투명하다는 예상이 나왔다. 서울대는 고1이 대입을 치르는 2028학년도 수시 일반전형에서 서류평가 성적으로 2배수를 고른 뒤 성적과 면접을 100점씩 반영해 뽑기로 했다. 정시에서도 수능 60점에 교과역량평가 40점을 반영한다. 생기부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형태다. 대입은 여전히 수능과 내신, 세특 중 어느 것도 놓을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학생과 학부모의 집단 반발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김성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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