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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종의 이코노믹스] 에너지 데이터 공유 인프라, AI 시대 에너지 혁신의 열쇠

중앙일보

2025.07.27 08:18 2025.07.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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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 위한 한국형 에너지 데이터 스페이스(KEDS)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대한민국은 몇 등일까. 놀랍게도 3등이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다 비슷한 정도로 열등하지만 모두 3등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스갯소리는 한국의 현실과 글로벌 AI 초강대국과의 격차에 대한 낙담을 담은 푸념이다. 과연 한국이 AI 선진국으로 도약해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AI 선진국이 되기 위해 풀어야 할 선결 과제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결국 AI의 연료인 데이터 확보 싸움이다.

탄소 저감·AI 확대 변화 흐름 속
에너지 데이터, AI 학습에 최적화

개인정보 노출과 남용 위험 낮고
공기업 주축으로 자료 확보 용이

통합 에너지 데이터 생태계 구축
정부·공공기관·기업 힘 모아야

“AI 한다며, 정작 데이터는 어디 있냐.” 모든 AI 전문가는 AI를 살릴 것도 데이터이고 AI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데이터라고 말한다. 학습을 시키려고 해도 데이터가 없다.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는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아무도 내놓지 않는다.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의 비밀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데이터를 내놓지 않는다. 막상 AI를 적용하려 해도 기관마다 자료가 따로 있고, 형식도 제각각이며, 실시간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다. 100조원을 들여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십 만장을 구매한다고 해도 데이터 문제를 풀지 못하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데이터 스페이스(Data Space)’다. 기존처럼 모든 데이터를 한 서버에 모으는 중앙 집중형 데이터베이스 방식이 아니다. 데이터 스페이스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철학을 바탕으로 구축되는 분산형 데이터 공유 인프라다.

김영옥 기자
첫째, 데이터 주권 보장이다. 데이터를 보유한 주체가 소유권과 통제권을 그대로 유지한다. 둘째, 분산형 구조로 각 기관이 자신의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한 채 연결된다. 셋째, 상호운용성 확보가 핵심이다. 서로 다른 시스템 간에도 표준화한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와 커넥터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넷째, 투명성과 자동화가 가능하다. 스마트 계약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다섯째, 국제 표준을 선도해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 시스템 연동이 가능하다.

휴대전화 주파수나 단말기 종류는 달라도 어느 나라에 가도 로밍이 되고 데이터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표준 프로토콜이 있듯이, 데이터 스페이스는 개별 회사와 정부, 스타트업, 연구소가 각각 가진 데이터 시스템을 하나의 ‘표준 포트’를 통해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관이 풍력 발전 데이터를 보유하고, 다른 기관은 송전망 정보를 갖고 있다면, 이 두 데이터를 표준화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데이터 스페이스의 핵심이다. 그러면서도 각 기관이 ‘내 데이터를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공유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 데이터 주권도 지킬 수 있다.

AI로 재생에너지 변동성 제어해야
김영옥 기자
AI를 위한 데이터는 분야도 다양하고 방대하며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런 만큼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료는 프라이버시 문제가 심각하고 제조 AI도 기업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수직 계열화를 이미 달성한 기업은 자료 공유를 극도로 회피한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 저감, AI 활용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필수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 에너지 데이터다.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에 에너지 분야가 특히 적합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에너지 전환과 AI 확대를 위해서는 에너지 데이터 활용이 시급하다. 실시간으로 자료를 주고받고 전력 패턴을 학습하는 용도와 계통 연결과 전력 거래에 AI를 활용해야 한다. 초 단위로 변동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인간 능력 밖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전소와 송전망, 스마트미터 등에서 데이터가 24시간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에 실시간 분석이 가능하고 이를 계측하고 제어하고 거래하는 메커니즘을 AI에 맡겨야 한다.

둘째, 에너지 분야의 경우 개인 정보 이슈가 다른 분야보다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에너지 데이터는 대부분 정형화된 수치 데이터로 구성돼 있고 개인정보가 노출되거나 남용될 우려가 매우 낮기 때문에 AI 학습과 예측에 가장 빠르게 최적화할 수 있다.

김영옥 기자
셋째, 대부분 에너지 공기업이 주축이 돼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을 통해 손쉽게 인센티브를 만들어주고 정보 공개를 촉진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데이터 확보 촉진에 나선다면 공공 영역에서 방대하고 귀중한 자료가 사장되지 않고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넷째, 에너지 데이터를 이용한 추론을 할 경우도 예측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계절과 시간대, 날씨 등의 반복적인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측 모델을 구축하기에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전력 효율 개선과 탄소 저감, 시스템 안정성 확보 등 명확하고 계량화 가능한 최적화 목표가 존재해,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과 AI 적용의 효과를 분명하게 기대할 수 있다.

에너지 데이터 분석 시장 급성장 중
세계는 이미 데이터 스페이스 경쟁에 돌입했다. 유럽은 ‘GAIA-X’라는 초국가적 프로젝트를 2019년부터 추진 중이고, 독일은 자동차 산업에서 출발한 ‘카테나-X(Catena-X)’를 통해 데이터 공유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 중이다. 이 플랫폼은 2021년 28개사에서 출발해 2023년 144개사로 확대됐다. 전기차와 배터리, ESG 데이터 등 모든 산업 데이터를 연동하며 글로벌 확산을 이루고 있다.

일본은 전력시장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는 ‘저팬 에너지 허브(Japan Energy Hub)’를 운영 중이며, 100여개 민간 기업이 참여한 ‘DATA-EX’를 통해 업종을 초월한 데이터 공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뉴욕주의 IEDR, ‘Green Button’ 플랫폼으로 소비자 중심의 데이터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700만 대의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에너지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글로벌 에너지 데이터 분석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2023년 83억3000만 달러였던 시장 규모가 2032년에는 35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연평균 17.7%에 달하는 고성장률이다.

데이터 스페이스와 관련해 한국은 이제 겨우 관련 논의를 시작한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데이터는 심각한 파편화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 발전소, 가스공사, 에너지공단, 산업부, 환경부 등 각 기관이 자신만의 시스템에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고, 서로 연동되지 않는 ‘데이터 사일로(silo)’ 상태에 있다.

에너지 데이터 관련 예산 연간 250억뿐
문제는 단순한 기관 분산에 그치지 않는다. 각 기관은 서로 다른 포맷과 접근 절차, 기술 인프라를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데이터는 실시간이 아닌 데다 공공 접근성도 낮다. 이런 구조로는 AI가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다. 현재 관련 흐름을 주도하는 외국의 상황과 달리 심각한 장애에 직면해 있다. 기관별 통합 플랫폼 구축보다는 개별 시스템 구축에만 집중하며, 데이터 공유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기술적으로도 레거시 시스템과의 호환성 문제, 실시간 연동 기술 부족, 표준화 지연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무엇보다 데이터 스페이스 관련 통합 법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관별 개별 법령으로만 운영되고 있어 제도적 공백이 심각하다. 그 결과 현재 에너지 데이터 관련 예산은 연간 250억원 수준으로 청사진이 요구하는 투자 규모의 5%에도 못 미친다. 파편화된 추진과 예산 부족, 기관 이기주의, 기술적 후진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2030년까지도 완전한 구축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제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대부분 경쟁력을 잃고 희망의 불씨도 꺼져가고 있다. 앞으로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AI 주도의 경제 성장만이 살길이다. 한국은 에너지 기술과 전력망, 스마트시티 등 다방면에서 선진화된 인프라를 갖고 있지만, 이를 AI로 전환하는 길목에서 데이터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한국 에너지 인프라, AI 전환 벽 부닥쳐
지금이 그 벽을 허물 적기다. 에너지 데이터 스페이스는 단순한 IT 인프라가 아니다. 이는 곧 에너지 주권과 AI 산업 경쟁력, 탄소 중립 실행력과 직결된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글로벌 표준은 유럽이 가져가고, 플랫폼은 미국·중국이 장악하게 된다. 데이터 없이는 AI도 없다. AI 시대, 에너지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한국형 에너지 데이터 스페이스(KEDS)부터 구축해야 한다.

KEDS의 전략은 크게 5가지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시스템 간 호환 가능한 공통 언어(API, 모델)를 구축하는 데이터 표준화 및 상호운용성 확보 ▶블록체인 등으로 신뢰성을 확보하며 데이터 소유권을 유지하는 분산형 데이터 인프라 구축 ▶개인정보 및 민감정보 보호를 위한 명확한 법·제도 정비 등 보안 및 거버넌스 체계 마련 ▶데이터 제공 및 활용 기업에 대한 보상 체계 마련 ▶스타트업·연구자 대상 데이터 개방 및 실증 환경 구축 등 생태계 조성이다.

AI에 미래를 걸어야 한다면 KEDS로 시작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이 합심해서 주도적으로 KEDS를 추진하고 AI 세상으로 달려가야 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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