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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의 중국 과학기술 굴기] 중국, 불을 끈 공장과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중앙일보

2025.07.27 08:20 2025.07.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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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 한양대 교수
‘암흑공장’과 ‘996’. 언뜻 보면 수수께끼 같은 단어이지만, 최근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의 전환을 위해 제조업의 첨단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 ‘전략성신흥산업’, 그리고 ‘신품질 생산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제조업 육성 정책들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그 결과, 2025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에 중국 기업 70여 곳이 포함되고, 전 세계 등대공장의 40%를 점유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중국 제조업의 도약 원인을 ‘996’(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으로 대변되는 고강도 노동 투입과 빠른 ‘무인화’로 해석하고 있다. 과연 그것 때문일까.

AI 활용한 CATL 제조혁명
생산성·안정성 끌어올려
저부가가치는 자동화하고
고부가가치에 인력 집중

R&D 지능화와 제조 첨단화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국제공급망 박람회(CISCE)의 CATL 부스. 초고속 충전 배터리를 전시하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중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 CATL은 높은 업무 강도만큼이나 선도적인 연구·개발(R&D)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2021년 21세기 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에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선두 주자다. 자체적으로 배터리 전용 AI 모델을 개발하고 컴퓨팅 센터를 구축해 나트륨이온·전고체·리튬-금속 등과 같은 차세대 후보 물질과 조합을 탐색하는 데 활용했다. 그 결과 기존 제품 대비 2배 이상의 에너지 밀도와 수명을 보유한 리튬-금속 전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AI 기반으로 새로운 양극재·음극재를 설계하고, 고체 전해질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등 AI를 새로운 물질 설계·합성·검증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전반적인 R&D 소요 기간은 AI 도입 전 대비 70~80%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CATL은 AI를 활용하여 제품의 혁신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생산 과정에 광범위한 AI 도입을 통해 제품의 생산성과 안전성도 향상했다. 푸젠성에 있는 CATL의 닝더 공장은 AI를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75% 향상시켰고, 불량 검측률을 80% 줄였다. 쓰촨성의 이빈 공장은 AI 도입으로 조립 효율이 100% 증가했고, 안전사고는 100% 감소했다. 장쑤성의 리양 공장은 AI·빅데이터 기반의 시스템 구축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과 헬륨가스 누출을 각각 80%, 100% 줄였다.

이와 동시에 CATL은 AI 기반의 초정밀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을 통해 자사 제품 불량률을 100만 개당 1개인 DPPM(Defective Parts Per Million)에서 10억 개당 1개인 DPPB(Defective Parts Per Billion) 등급까지 향상했다. CATL이 매해 약 1000만 개의 제품을 납품한다고 가정하면, 100년에 한 개의 불량 제품이 탑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AI 기반의 전주기 배터리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고장을 예측하고, 핵심 금속의 재활용 비율을 95% 이상 높이는 등 순환 경제의 요구 수준도 만족시키고 있다. CATL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수석 과학자 우카이(吳凱)는 2023년 말 CATL의 미래 혁신 방향을 ①풀 패키지 스마트 시스템 연구개발 및 도입을 통한 전 과정의 지능화 실현 ②전 공정 품질 관리 고도화를 통한 불량 제로 시스템 구축 ③친환경 에너지 도입 확대 및 에너지 효율 제고를 통한 탈탄소 생산 체계 강화 ④지능형 설비의 일체화 및 표준화를 통한 공장의 완전 자동화·지능화 실현으로 발표했다. CATL이 앞으로도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해 기업의 혁신성·생산성·안정성·친환경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젊은 R&D 인재와 첨단 생산로봇
CATL이 대변하는 중국식 제조 혁명은 AI와 로봇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저부가가치 활동은 자동화시키고, 고부가가치 활동에 인력을 집중시키는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부상하는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 등의 신흥국과 공격적인 리쇼어링(reshoring)을 추진하는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 첨단 제조 가치사슬의 우위를 내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올해 방문한 베이징·상하이·광둥의 첨단 제조 혁신 클러스터는 모두 앞다투어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와 ‘불이 꺼진 채로 돌아가는 공장’ 중심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대기업마다 수만 명에 이르는 평균 30대 초반의 R&D 인력이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고, 청년들이 선호하지 않는 공장의 노동은 AI와 로봇이 대신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륙의 소규모 도시들과 전통 산업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 최고의 첨단 제조 클러스터의 불빛은 과연 어디에서 켜져 있느냐이다. 혹시 우리는 연구소의 불은 끄고, 공장의 불은 켜야만 하는 상황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도 할 수 있지만 제도적인, 혹은 사회적인 요인으로 안 하는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의 경쟁자들은 이미 핸드폰부터 스마트카까지 한 공간에서 맞춤형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수퍼 팩토리 생산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리쇼어링(reshoring)=생산비와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 등대가 어두운 바다에서 배의 길을 안내하듯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높여 다른 제조업체들의 본보기가 되는 공장을 뜻한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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