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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시각각]한·미 관세 협상, 일본보다 잘해낼까

중앙일보

2025.07.27 08:24 2025.07.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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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트럼프 2기 미국 정부가 제시한 상호관세 유예 시한(8월 1일)이 임박하면서 한·미 간에 막판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한국산 제품에는 기존 품목별 관세와 별도로 25%의 고율 관세가 일괄적으로 부과될 테니 수출 급감과 경제 충격파가 우려된다.
데드라인을 앞둔 한·미 양국의 표정은 극과 극이다. 출범 한 달을 넘긴 이재명 정부는 초비상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방미 중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고,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미국행 비행기 탑승 직전에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면담 취소 통보를 듣고 발길을 돌렸다. 동맹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굴욕감을 느낄 만한 무례한 심리전이다. 미국의 불만을 감지하고 다급해진 대통령실은 지난 25일 긴급 통상회의를 열어 "협상 품목에 농산물도 포함돼 있다"고 농산물 개방 확대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 26일 자신이 소유한 스코틀랜드 턴베리 골프장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그는 중간에 음악을 들으며 스윙하는 등 여유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EPA=연합뉴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천하태평인 모양이다. 지난 주말 어머니의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자신이 소유한 트럼프 턴베리 골프클럽에서 차남 에릭 일행과 함께 한가롭게 골프를 즐겼다. 29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트럼프는 그동안 한국·EU·인도 등을 겨냥해 관세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8월 1일부터 높은 상호관세를 물리겠다고 압박해왔다.
8월 1일 시한 임박 막판 줄다리기
쌀·쇠고기 등 민감 품목 개방 압력
정치 득실보다 큰 국익 앞세우길
미국이 칼자루를 쥔 상황에서 칼끝을 잡은 한국은 시간이 갈수록 선택지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특히 일본이 지난 22일 참의원 선거 직후 미·일 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의 부담이 커졌다. 일본은 미국행 수출품에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미국산 쌀과 자동차에 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5500억 달러(약 76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도 참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6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가던 공군 1호기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최소한 다른 국가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최근 미국이 부과한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협상을 타결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이 참고할 일종의 기준선(15%)을 일본이 앞서 제시한 모양새다. 실제로 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일본보다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는 게 우리에겐 최고"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재명 정부는 일본보다 더 유리하게 협상을 마쳐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이번 한·미 협상은 상호관세율을 최대한 낮추는 대신 트럼프가 흡족해할 것을 양보해야 하는 구도여서 아무리 잘해도 국내에서 박수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협상력은 기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용기다. 이미 협상을 타결한 영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일본 등 5개국은 예외 없이 농축산 시장을 미국에 개방했다. 특히 이웃 나라 일본은 민감 품목인 쌀을 양보했는데, 이재명 정부는 지지 기반인 전라남북도 농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쌀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 장면. 당시 좌파 진영에서 30개월이 넘는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괴담이 유포되기도 했다. [뉴시스]
쇠고기는 또 어떤가. 2008년 좌파 진영은 광우병 괴담을 유포하며 30개월 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결사반대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세계 2위 쇠고기 수출국인) 호주가 미국산 쇠고기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우리의 훌륭한 쇠고기를 거부하는 다른 나라들도 (개방) 요구를 받은 상태"라며 자랑했다. 쌀은 미국 민주당이 강세인 캘리포니아가 주산지이지만, 쇠고기는 미국 전역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트럼프의 쇠고기 압력이 더 높을 거란 전망도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이번 주 미국으로 가서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관세 협상 시한 하루 전날인 31일엔 한·미 재무장관 담판이 잡혔다. 벼랑 끝에 몰린 협상팀에 한 가지 주문하고 싶다. 국내정치적 계산을 앞세우다 자칫 큰 국익을 훼손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민감해도 불가피하다면 전체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 국민 앞에 소상하게 설명하고 차분히 설득하고 구체적 피해 보완 대책을 제시하며 진솔하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본보다 더 유리한 성공적 협상으로 친일·반일 콤플렉스를 훌훌 벗어던지고, 국익 중심의 진정한 실용주의 외교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기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6월 17일 캐나다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만나 회담하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란 뜻깊은 해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장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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