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8일 담화를 내고 “리(이)재명 집권 50여일만 조명해보더라도 한·미 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며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 고위급이 나서 첫 입장을 밝힌 가운데 시점상 한·미 간 첨예한 통상 협상이 진행되는 시기를 골라 동맹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며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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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긴장 완화는 귀맛 좋은 장설”
김여정은 이날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담화를 내고 이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이재명의 집권 50여일만 조명해보더라도 앞에서는 조선반도 긴장 완화요 조한 관계 개선이요 하는 귀맛(듣기) 좋은 장설을 늘어 놓았지만 한·미 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면서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회복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김정은이 직접 선언한 민족·통일 지우기와 ‘적대적 두 국가 관계’의 노선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김여정이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한국은 절대로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고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동시에 김여정은 ▶대조선(북) 확성기 방송 중단 ▶삐라(전단)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관광 허용 등 정부의 대북 신뢰 조치를 거론하며 대북 방송 중단과 관련해선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라며 “평가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고 혹평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남북 관계 복원을 언급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취임사 발언이나 통일부 명칭 변경,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하는 문제와 관련한 내용까지 열거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조치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바꿔 말하면, 이번 담화는 남측에 이와 같은 ‘성의 표시’를 더 요구하며 전임 윤석열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보라는 뜻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김여정이 “한국이 이제 와서 스스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면 그 이상 엄청난 오산은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란 의미로 보인다. “해체돼야 할 통일부의 정상화를 시대적 과제로 내세운 것을 보아도 확실히 흡수통일이라는 망령에 정신적으로 포로된 한국 정객의 본색은 절대로 달라질수 없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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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한·미연합훈련 콕 짚어 거론
나아가 김여정은 이재명 정부의 적대성을 거론하며 “또다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북한이 바라는 ‘성의’는 내달 예정된 한·미 을지자유의방패(UFS) 연합훈련 중단이란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이재명 정부의 동맹 중시 기조를 문제삼으며 한·미 연합훈련까지 거론한 건 남측이 취할 수 있는 남북 신뢰 조치의 최대치를 가늠하는 동시에 한·미 간 틈새 벌리기를 시도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리재명 정부'로만 호칭할 뿐 원색적 비난을 담은 수식어는 붙이지 않는 등 나름대로 수위 조절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가 민감한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이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하는 담화를 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면 한·미 동맹에 의존하지 말고 연합훈련도 중단해야 한다는 조건을 노골적으로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정부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북 고위 당국자의 첫 대남 대화를 통해 표명된 북측 입장에 대해 유의하고 있다”며 기존의 대북 접근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의 적대.대결 정책으로 인해 남북간 불신의 벽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 정착은 이재명 정부의 확고한 철학으로 정부는 적대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일관되게 취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여정이 '감상적인 말'을 문제삼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행동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