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타결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 협상이 여전히 뒷말을 남기고 있다. 일본과 무역 합의 이어 EU와 합의에서도 미국이 합의안을 두고 당사자와 다른 말을 해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EU 수출품의 관세율을 15%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처음 발표했던 상호관세율인 20%에서 소폭 줄어든 수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불확실한 시기 대서양 모두에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모두에게 좋은 합의”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두고선 양쪽 다 상반된 설명을 내놨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자동차, 반도체 뿐만 아니라 의약품도 15%의 관세율을 적용받는다고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서 의약품은 제외”라는 입장이다.
유럽의 주력 수출품목인 철강과 알루미늄을 두고도 말이 엇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발표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50% 관세를 염두에 두고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했지만,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철강 관세를 내리고, ‘쿼터제’도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쿼터제는 일정 비율까지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그 이상부터는 50%의 관세율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두 정상의 발언을 두고 혼선이 이어지자 미 정부는 “의약품은 폰데어라이엔 의장 말대로 15% 관세율을 적용하는 데 합의했고, 철강과 알루미늄은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기존대로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며 부랴부랴 교통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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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EU는 3년간 총 7500억 달러(약 1038조원)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고 6000억 달러(약 830조7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이 관세를 낮추기로 한 대가다. 하지만 언제, 어느 분야에 투자할지 세부적인 이행 계획은 나와있지 않다. 블룸버그는 “무역 협상 타결에는 몇 년이 걸리게 마련이고, 협정문은 수천 쪽에 달하는 게 보통”이라며 “(이번 무역 협상은 겨우) 4월에 시작된 탓에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이번 협상을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EU는 협상 타결 이후에도 섣불리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와인과 주류 등 유럽의 주요 산업이면서도 합의에서 명시되지 않은 품목이 상당수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 역시 또 다른 변수다. 미국은 당장 “EU가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인상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미 정부가 진행 중인 무역확장법에 따른 조사도 관건이다. 무역 확정법은 특정 수입 품목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을 통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미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제약, 반도체, 항공우주 등 산업에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수입품목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3주 후 나올 조사결과에 따라 EU에 추가적인 관세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
미 싱크탱크 테네오의 카르스텐 니켓 연구부소장은 “이제 해석과 이행 리스크로 초점이 옮겨갔다”며 “불확실성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