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의 승부수로 ‘마스가’(MASGAㆍ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을 담은 ‘마스가’는 수십조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다.
28일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뉴욕 자택에서 진행된 관세 협상에서 이를 제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구호인 ‘마가(MAGAㆍ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왔다.
마스가 프로젝트에는 한국 민간 조선사의 미국 현지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대출ㆍ보증 등 금융지원까지 망라돼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수백억 달러, 한국 돈으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트닉 장관은 김 장관으로부터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만족을 표했다고 한다.
정부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미국 진출 때 필요한 금융지원을 위해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기관들도 참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출 금융기관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확정되면 조선 등 미국 투자기업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특히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현지 투자는 물론 기술 이전, 인력 양성 지원 등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국내 조선사와 함께 현지 워크숍, 인증 프로그램, 직업교육 등을 통합하는 인력훈련 프로그램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 재건은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목표 중 하나다. 미국의 조선업은 1980년 대 이후 보조금 축소와 과도한 산업보호정책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며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기자재, 인프라, 부품, 인력 등 산업 생태계 전반적인 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핵항공모함, 이지스함 등 첨단 군함과 달리 상선은 조선능력이 사실상 상실됐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1910척 중 미국 조선소가 수주한 물량은 2척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상선 건조 능력 부활은 미국에서도 주요 과제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교수는 “미국은 군함의 경우 정부 예산으로 버텨왔지만, 민간 상선 분야는 높은 생산 비용 등의 문제로 생산 능력을 상실한 상황”이라며 “한국 조선업체들은 비용 최적화 등에 장점이 있는 만큼, 미국 입장에서는 조선업 부활의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 협력이 협상카드가 되며 대미 투자 부담이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5500억 달러, 유럽연합(EU)은 60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에 4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 측의 4000억 달러 투자 요구는 경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충족시키기 어려운 액수”라며 “미국 측은 선박 건조 능력 회복을 원하는 만큼 이를 투자 카드로 활용할 경우 투자 금액을 줄이는 등의 효과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선업이 협상 카드로 불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통상 관계자는 “조선업 부활이 미국의 관심사로 협상 의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실무단에서는 조선 협력이 결국 한국 조선업체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며 “결국 우리 측의 투자 규모가 상당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도 주요 협상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EU는 매년 2500억 달러씩 3년에 걸쳐 총 7500억 달러(약 1038조원)어치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입 등을 카드로 관세를 15%로 낮췄다. 한국은 지난해 4633만t의 LNG를 수입했는데 이중 미국산은 564만t으로 전체 수입량의 12% 이다. 미국이 지난해 LNG 세계 1위 수출국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수입 비중은 낮은 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EU의 경제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더 큰 투자 패키지를 내놓아야 합의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산 에너지 대량 구매를 내세워 일본 수준에서 합의를 한 것 같다”며 “한국도 조선,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늘려 투자 패키지를 최대한 낮추는 전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민감사안인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국방비 지출 확대 등도 미국에 어느정도 양보를 할 지 내부 조율 중이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세 협상을 계기로 미국산 농축산물 개방 가능성이 제기돼 농민들 반발이 일고 있다’는 질문에 “미국 측 압박이 매우 거센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농축산물 (개방)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답했다. 다만 “가능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양보의 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 수석은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도 함께 논의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 문제도 협상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관세ㆍ비관세 부문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까지 함께 논의하는 ‘안보ㆍ통상 패키지 딜’을 추진해 왔다.
한편 미국에 머물던 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의 추가 협상 기회를 만들기 위해 유럽에 떠났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EU와의 통상 협상을 위해 지난 26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로 떠난 상태다. 28~29일 열리는 미ㆍ중 무역협상에 러트닉 장관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추가 협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31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협의를 위해 29일 출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