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을 다시 읽었다.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서술한 이 책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이야기의 정글이나 다름없다. 두 권짜리 새 번역으로 책을 사놓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덕분에 밑줄도 치지 않은 새 책을 선물상자를 열 듯 읽게 된 것이다. 아우렐리아노가 총살 직전 아버지를 따라 얼음 구경을 갔던 순간을 회상하는 첫 문장과 마주하자 두근거린다. 과연 마법이 아직도 통할까?
오래전 이 책을 읽고 나서, 읽고 또 읽다가, 생각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몇장을 읽어가다, 중간의 어디를 펼치든 끝까지 다 읽게 되는 마법에 걸려 있던 시기가 있었다. 발명에 미친 아르카디오, 죽어서도 이 집에 깃드는 집시 멜키아데스,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집안을 관장하는 우르슬라, 전쟁 영웅으로 권력 속에 살다가 황금 물고기를 만들며 여생을 보내는 아우렐리아노, 흙과 비애를 먹는 레베카와 처녀로 죽을 운명의 아마란타, 하늘로 승천하는 미녀 레메디오스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돈벼락을 맞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를 다시 만나는 일은 오래된 친구와 재회하는 것 같았다.
이 거대한 책 속에 채집된 것은 결국 인간의 본질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고독은 필수불가결한 문제다. 우리는 각자 지닌 죽음이라는 결말을 가진 채 함께 살아가는 종족이기에, 바깥세상을 가라앉혀 내 존재를 톺아보는 시간에는 고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부엔디아 사람들은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저마다 식지 않는 고독 속에 살아가며 자기 운명이 거대한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아니 우리 자신에게 우수 어린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책에 걸려있는 마법은 여전했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읽어도 닳지 않는 책,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덮는 순간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