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상장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연초부터 중복 상장 논란으로 20여 개 기업의 상장이 철회되거나 연기되었다. 바이오 기업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 제노스코 사례가 대표적인데, ‘동일 사업 모델 자회사의 복제 상장’이라는 평가를 받아 4월 예비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중복 상장은 상장 기업들이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설립한 새로운 법인, 혹은 경영권을 보유한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경우를 일컫는다. 본질적으로 불법이나 탈법은 아니다. 자금 조달이나 지배구조 효율화를 위한 수단이다.
다만 기존 모회사 주주들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음에도 엄격한 보호 장치 없이 허용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22년 초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부문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할하여 상장한 것이 논란의 기폭제가 되었다. 핵심 성장 사업이 별도 상장 법인이 되면서, LG화학의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는 주주들의 우려를 해소할 충분한 대안이 제공되지 못했다.
이에 금융위원회에서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사전 공시 강화와 심사 기준 보완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제노스코 사례 이전까지 실제 제재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주식 시장 활성화와 주주 권리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최근 국회·거래소·금융당국 등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파마리서치가 투자와 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하여 각각 상장사로 유지하려는 시도가 무산된 바 있고, SK이노베이션에서 인적분할된 SK엔무브의 상장 시도는 한국거래소가 요구한 주주 보호안에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철회되었다. 문제는 이런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 뒤에, 커다란 리스크가 하나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자회사의 지분을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매각하여,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자회사의 상장을 약속했는데, 중복 상장의 주목적이 그러한 재무적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로 보이는 경우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자와 모회사 간의 갈등이 커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모회사의 재무적·법률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지분 40%를 재무적 투자자에게 매각하면서 2026년까지 상장을 약속했던 SK엔무브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장 신청을 철회한 뒤, 해당 지분을 다시 사들이기 위해 3767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해야 했다. 유사한 형태로 투자된 자금의 규모는 수십조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금융 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가할 수 있는 규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