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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후위기는 ‘국민 건강 위기’로 직결된다

중앙일보

2025.07.28 08:20 2025.07.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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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지구가 뜨거워지는 현상은 분명하다. 유엔의 분석에 따르면 2011~2020년 지구 표면 온도는 1850~1900년보다 1.09℃높아졌다. 이에 따라 2010~2019년 북극의 9월 해빙(海氷) 면적은 30년 전보다 40% 줄었고, 1901년 이후 세계 평균 해수면은 20㎝ 상승했다.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할 경우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3~5℃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홍수·산불 발생 이후 환자 증가
대형병원들 탄소 배출 감축하고
하버드처럼 기후위기 교육해야

이러한 기후변화는 인류의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준다.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증가하면 모기가 많아지니 말라리아·뎅기열·일본뇌염 등 모기가 옮기는 질병이 증가한다. 최근처럼 40도 전후의 폭염은 심혈관 계통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심박 수와 심장 수축이 증가해 심장에 부담이 가중되고, 혈액이 끈적해지면서 협심증 같은 허혈성 심장 질환이나 뇌경색 발생 위험이 커진다. 하루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자살률이 1.7%씩 증가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기후변화는 정신 건강에도 위협 요인이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고 폭염 일수가 증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온 상승은 지구와 대기 사이에서 물의 순환을 교란해 홍수·가뭄·산불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게 한다. 이 또한 인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다. 홍수로 인한 콜레라 창궐, 천둥 폭풍으로 인한 천식 악화, 산불로 인한 심폐질환의 악화 등이 대표적 사례다. 2017년 동해안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 노출된 주민들의 만성폐쇄성 폐질환·폐렴·심부전으로 인한 의료기관 이용이 확연히 늘었다. (주간 ‘건강과 질병’ 2024년)

기후변화가 건강에 주는 영향을 감소시키려면 무엇보다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런데 백신, 의약품, 의료 장비의 개발·생산과 검사·치료 등을 담당하는 보건의료 부문의 탄소 배출량도 상당해 적극적인 감축이 필요하다. 2019년의 경우 보건의료 부문에서 뿜어낸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5%가 넘었다.

그렇지만 국가별로 평균 건강수명과 보건의료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율은 크게 달랐다. 2022년 국제 의학 학술지 란셋에 따르면 1인당 보건의료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미국이 단연 1위로 1.7t이었는데, 평균 건강수명은 66.2세에 불과했다. 한국은 평균 건강수명이 73.1세로 미국보다 길었지만 1인당 보건의료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1.1t으로 더 적었다. 그렇지만 평균 건강수명이 72.1세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프랑스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0.3t으로 훨씬 적었다.

한국 의료기관의 에너지 사용량도 상당하다. 2023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한 상위 10개 기관 중에 3곳이 대형병원이었다. 검사와 수술, 진료실과 입원실 운영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친환경 경영을 선언하고 있지만, 명확한 규정이 없다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의료기관 인증평가나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탄소 배출 저감 항목을 포함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의과대학에서도 기후변화를 학생들에게 비중 있게 가르쳐야 한다. 한국의 경우 기후변화 관련 내용을 교육과정에 포함한 의과대학은 거의 없다. 미국은 다르다. 절반이 넘는 의과대학이 기후변화 관련 강좌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하버드 의대는 ‘기후변화·환경·건강’에 대한 이해를 학생들이 반드시 습득해야 할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정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질환과 건강 형평성에 주는 영향 등을 교육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누차 강조했듯이 기후위기는 심각한 건강 위기다. 인류가 높여놓은 지구 온도는 미래 세대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그런데도 한국사회의 관심과 투자는 미흡하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정책 변화는 물론 기후변화 관련 교육과 연구에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탄소 배출을 생각하지 않고 편한 것만을 찾는 생활 습관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의 건강을 결정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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