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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혁신 기업 생겨야 혁신 성장…대학가 창업 독려해야

중앙일보

2025.07.28 08:26 2025.07.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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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한국’ 지속가능한 성장 하려면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950년대 한국의 10대 기업에는 개풍상사라는 회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개성을 거점으로 시작한 회사로 개풍상사의 고무신은 우수한 품질로 큰 인기를 끌었고, 광복 이후에는 탄광과 시멘트 회사, 그리고 서울은행을 세웠다. 4·19 혁명으로 부정축재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1960년대 삼성과 삼호에 이은 3대 대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0년대까지 한국의 최고 부자라는 칭호를 들은 사람은 박흥식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화신백화점의 사주였다. 총독부에 협력하면서 사업을 키웠고, 미군정 하에서 자금 횡령, 반민특위, 5·16 이후 부정축재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지만, 화신백화점의 엘리베이터와 6층의 비빔밥은 당시 장안의 최고 화제였다고 한다.

고무신 판매 개풍상사, 화신백화점 박흥식 1960년대까지 10대 재벌
미국 원조, 유상차관으로 바뀌자 산업 순위 변동, 제조업·건설업 부상
70년대 종합상사, 90년대 자동차·반도체, 2000년대 이후 먹거리 없어
테슬라 등 세계적 기업 역사 짧아, 우리도 창업 쉽게 기업 환경 바꿔야

화신과 대한중석
화신의 박흥식은 시대에 맞는 혁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지하철 건설을 추진했고, 1950년대에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원자력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군국주의를 위해 비행기공업주식회사를 세우기도 했던 그는 일본 패망 이후 하지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의 산업을 부흥할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화신 그룹은 1980년대에 해체되었다.

1960년대까지 10대 기업에는 1947년에 설립된 대한중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석(텅스텐) 수출을 담당하는 국영기업이었다. 세계최대의 중석 단일광구였던 영월의 상동광산을 축으로 해서 세계 중석 시장의 8%에 달하는 중석 수출량을 자랑하던 회사였으며, 중석은 1960년 기준 한국의 대외수출의 60%를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광물이었다.

1952년 전쟁 중에 중석불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거의 유일한 수출물이었던 중석 판매로 벌어들인 달러는 기계류 등 산업 자재의 수입에만 쓸 수 있었지만, 식량과 비료를 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하고, 정치자금을 지원한 특정 민간업자들에게 외환을 불하했던 것이다. 이들은 비료와 밀가루뿐만 아니라 환차익을 통해서도 엄청난 규모의 폭리를 취했다.

원조에서 차관 경제로
이들 개풍상사와 화신백화점, 그리고 대한중석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삼성·락희·대한·삼호·삼양 등과 함께 10대 재벌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무상원조가 유상차관으로 바뀌면서 정경유착과 원조산업에 의존하고 있던 기업들이 몰락한 반면, 차관에 기초한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의 기업들이 부상했다. 현대건설이나 한일시멘트·한진그룹, 그리고 쌍용양회 등이 베트남 전쟁과 건설 경기의 바람을 타고 1960년대에 10대 기업에 포함되었다.

1970년대 이후 대우실업이 처음으로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다.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화학섬유 분야의 동양나일론과 효성그룹, 태광산업과 그리고 선경(SK), 그리고 코오롱 등이 대한민국의 대표적 회사로 성장하였다. 또한 금성과 삼성이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전자산업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금성은 락희와 합병해서 LG로 변신했다.

원조경제 중심의 삼백산업으로 성장했던 삼성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1970년대 이후 전자산업으로의 성공적인 혁신을 시작했다. 금성과 선경도 전자산업으로의 혁신을 이루었고, 현대는 건설산업과 함께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을 이루었다.

물론 19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주역 중에는 종합상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잘 묘사되고 있는 종합상사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도 1975년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쌍용·대우·국제·한일·고려·효성 등의 종합상사가 해외로의 수출판로를 개척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대 이후 대기업 중심의 혁신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한국의 10대 기업은 1960년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업종이 등장했다. 현대·삼성·LG·선경·대우 등이 10대 기업의 선두에 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현대가 건설·자동차·조선·중공업 등으로 자산 1위, 삼성이 반도체·가전·건설 등으로 2위, LG가 전자·화학·통신 등으로 3위, 대우가 자동차·중공업·조선 등으로 4위에 올랐다.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한진그룹이 물류와 항공으로 6위에 올랐고,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하면서 정유와 통신(SK텔레콤)으로 8위를 기록했다. 경제성장과 함께 유통·식품 산업이 성장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 롯데가 처음으로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자가용 시대가 시작되면서 쌍용자동차와 금호타이어 등이 급성장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한국의 10대 기업에서 이러한 순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지 재벌 기업들이 2세대와 3세대로 가면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30대 기업 안에 드는 회사들을 보면 1980년대 구조조정, 1997년 금융위기로 문을 닫거나 다른 재벌에 인수된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한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주식회사
광복 80년을 맞이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MIT의 암스덴 교수는 1970년대의 한국을 한국종합주식회사라고 표현했다. 195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을 두고 일본주식회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듯이 암스덴 교수도 『아시아의 다음 거인』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에도 동일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부의 정책과 관료, 그리고 기업인들이 하나가 되어 경제성장을 위해 뛰어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부정과 부패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전자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이루었던 부분은 한국의 지난 80년간 지속가능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또한 3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한국이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한국 경제가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2019년 한국은 5위에 위치해 있었다. 2009년의 세계 30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순위가 올라갔다. 그러나 2025년에는 기업환경 평가의 하나로 활용되는 국가경쟁력 순위는 27위로 하락했다. 또한 2025년 기업효율성이 44위로 하락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답답해 보이는 한국
물론 창업과 관련된 순위는 올라갔다. 창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한국은 2007년 세계 110위에서 2019년에는 19위로 순위가 상승했고, 2025년에는 서울이 창업하기 좋은 도시 세계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순위와 현실 사이에서는 간극이 보인다. 지난 40년 동안 새로 창업한 중소기업 중 10대 기업에 오른 회사가 있었던가?

1970년대 전환기 대기업의 혁신은 성공적이었지만, 반대로 이로 인해 대기업의 위치는 더더욱 확고해졌다. 1980년대 구조조정 기간 동안 재벌로 몸집을 불린 대기업들은 이제 대마불사의 위치에 서 있다. 혁신 성장이 보이지 않는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 미국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1975년 창업), 애플(1976년), 엔비디아(1993년), 테슬라(2003년), 아마존(1994년) 등이다. 모두 3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창업하고 성장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엑슨모빌과 같은 전통적 에너지 기업들도 있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새로운 기업들이다. 포드나 제네럴 일렉트릭 같은 기업들은 더 이상 10대 기업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엔비디아가 필요하다
자본과 기술이 모두 충분하지 않았던 과거의 한국은 정부의 노력과 함께 일부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집중적으로 기술혁신에 나가야만 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다르다. 여전히 기존 대기업의 투자가 중요하겠지만, 큰 몸집에서 유연한 변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한국 경제의 혁신적 성장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의 창업과 성장, 그리고 그들의 전략을 봐야 한다. 한국은 따라가기에만 익숙했고, 앞에서 이끄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이제 그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창업이 필수학점이 되어야 하고, 구글 창업에서 보듯 학생이 교수에게 투자해달라고 요청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 혁신적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광복 80년,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어 미래 80년의 새로운 모델을 시작해야 할 때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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