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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시시각각]17년 만에 부메랑 된 '광우병 괴담'

중앙일보

2025.07.28 08:28 2025.07.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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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정치외교안보부국장
2008년 4월 18일, 당시 출범한 지 채 두 달이 안 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협상을 미국과 타결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합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작업의 하나였다. 그때만 해도 MB 정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이 몰고 올 후폭풍을 가늠하지 못했다. 대선(2007년)과 총선(2008년 과반 획득)에서 압승을 거두며 승리감에 도취한 탓에 진보좌파 진영의 독수(毒手)를 간과했다.

MBC가 2008년 4월 29일 방송한 PD수첩 광우병 보도 영상. [MBC 화면 캡처]
협상 열흘 뒤 MBC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내보냈다. 멀쩡한 소가 주저앉는 등 인간광우병(vCJD) 내용이 방송되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공포감이 한국 사회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보고된 적도 없었지만, 괴담은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5월 초 청계천광장에서 시작된 광우병 촛불집회엔 곧이어 유모차 부대가 등장하고 ‘뇌송송 구멍탁’이 울려퍼졌다.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으로선 호기였다. 재협상을 촉구하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광우병 집회에 가세했다. 시위대는 5월 말엔 청와대 진출까지 시도했다. 결국 그해 6월 30개월령 미만 소만 수입하는 것으로 미국과 재합의하고, 8월 가축법(30개월 이상 수입 시 국회 심의)이 개정되면서 ‘광우병 파동’은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하지만 MB 정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정치적 이득
이제는 관세 협상에서 걸림돌 돼
집권세력으로 괴담 중독 벗어나야
17년 전 일을 새삼 꺼낸 것은 마감기한을 사흘 앞둔 미국과의 관세 협상 때문이다. 수백조원에 달하는 투자와 동시에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지점은 농산물 개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호주의 쇠고기 시장 개방 소식을 전하며 “우리의 훌륭한 쇠고기를 거부한 나라를 지켜보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현재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하는 국가 중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결국 쇠고기 개방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사실상 기본값이라는 게 중론이다.


2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회담 후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집권여당은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 채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두 후보는 지난 27일 TV토론에서 쇠고기 시장 개방과 관련, “축산농가에 매우 불리한 (요구인) 만큼 (30개월 이상 수입 불가는) 이재명 정부가 지켜줬으면 좋겠다”(정청래 의원), “광우병과 관련한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부분이다. 주권자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협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박찬대 의원)고 했다. 쇠고기 수입 규제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쇠고기를 내주지 않고 관세를 15 % 로 낮출 수 있는 복안이 있는가.

쇠고기 개방은 그나마 관세협상에서 한국에 피해가 덜한 부분이다. 왜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께름칙하게 하는 광우병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렸다는 사례는 역사상 한 건도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기존 노선을 답습하는 건 17년 전 ‘광우병 괴담’에서 자유롭지 못해서다. 한 번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PD수첩에 대해 법원 판결이 있을 때였다. 2011년 대법원은 PD수첩의 핵심 내용인 ^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 ^ 아레사 빈슨의 사인과 광우병 연관성 ^ 한국인 유전자형과 광우병에 걸릴 확률 등을 모두 허위라고 명시했다. 다만 언론의 보도 기능을 존중해 명예훼손죄는 성립될 수 없다고 했다. 가짜뉴스지만 법적 제재를 가하는 건 무리라고 한 것이다. 그때라도 민주당은 유감을 표해야 했건만, 주지하다시피 이후에도 사드 전자파, 후쿠시마 오염수 등 때마다 괴담을 앞세워 정치적 이득을 챙겨 왔다.


백번 양보해 과거엔 야당이라서 그랬다 치자. 이제는 집권세력이다. 이제라도 쇠고기 개방이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불이익을 볼 농민을 달랠 방안도 찾을 때다. 무엇보다 ‘괴담 정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민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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