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취임식 당일 국회에서 야당 지도부와 오찬을 같이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저로 여야 지도부를 초청했다.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 상황을 직접 챙겼고 대처가 소홀했던 기초단체장을 질책했다. 노동자 사망 사고가 난 공장을 방문했고, 외국인 노동자 괴롭힘에 대해서도 엄정 조치를 지시했다. 논의할 것이 있으면 대기업 회장들과도 직접 만났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 해결을 위한 현장 중심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취임 초 이 대통령의 이런 실용주의는 이전 대통령들의 이념에 집착한 불통과 독선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소통 돋보이나 국정 비전은 숙제
큰 틀에서의 국가 변혁 고민 필요
AI 강국 목표, 시스템 개혁이 관건
취임 100일 땐 ‘큰 그림’ 제시 기대
하지만 아직까지 이재명 시대를 상징할 만한 대통령의 비전, 국정 운영의 큰 그림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점에 특히 유의하는 까닭은 지금이 중요한 시대적 전환기 같기 때문이다. 전환기는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런 시기에 이재명 정부가 시대적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적절한 국가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계에 부딪혀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활로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보면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우선 미국이 달라졌다. 오늘의 미국을 보면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성격이나 리더십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미국이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바뀔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산업기술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은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그리고 전쟁까지 바꾸기 시작했고,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시장에도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무역규제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 독자적 기술력을 확보했고, 많은 영역에서 이미 우리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증적 해결책보다 큰 틀에서의 국가 변혁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여기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나라를 이끈 대통령들이 전환기마다 이에 적절히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탈냉전의 시대로 전환되었을 때,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전개하면서 외교 영토를 넓혔고 우리 경제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김대중 대통령의 ‘정보화’ 모두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국정 비전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인공지능 강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3대 강국으로 이끌겠다는 것은 미국,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국가 목표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넘어선 다양한 영역에서의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을 보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젊은 인재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저비용으로 독자적인 생성형 인공지능 딥시크를 개발한 량원평은 40세, 그 기술개발을 도운 뤄푸리는 30세, 로봇개 등으로 잘 알려진 유니트리의 창업자 왕싱싱도 35세이다. 1990년대 출신의 젊은 인재들이 중국의 첨단 기술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런 중국과 비교해 보면, 모두들 의대에 가겠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첨단 기술을 이끌어 갈 이런 젊은 인재를 얼마나 배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센티브나 취업 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뤄푸리를 비롯하여 대부분 외국 유학이 아니라 중국 국내 교육을 통해 배출해 낸 인재들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들은 여전히 교육부의 각종 규제에 묶여 있고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고등 교육을 행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를 열 개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대학의 학문 역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교육 시스템의 개혁이 더 중요하다. 또 대학의 연구 역량을 정부, 기업과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AI를 예로 든 것이지만, 전환기의 국가 비전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나무뿐만 아니라 숲 전체를 바라보는 폭넓은 관점에서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인수위원회 시기도 없이 취임한 이 대통령에게 두 달도 안 지난 시점에서 이런 요구가 아직은 빠른 것일 수 있다. 취임 100일 회견 때에는 ‘이재명 표 국정 비전’에 대한 큰 그림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