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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집 없어 마을 통째로 옮긴다…착잡한 산청 상능마을

중앙일보

2025.07.28 21:45 2025.07.29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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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지반이 무너지면서 우리 하우스 농막이 원래 있던 곳에서 60m나 떠내려 왔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마을의 집과 땅이 갈라져 있어 마을에 발 디딜 엄두가 안 난다.”

29일 오후 주민 홍혁기(52)씨가 전한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의 상능마을 상태다. 해발고도 300m의 산기슭에 위치한 이 마을은 지난 19일 ‘극한 호우’로 마을 아래에 산사태가 발생, 그 위쪽에 있는 마을 지반이 꺼지면서 주택 등이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마을 일부가 완전히 푹 꺼진 것이다. 마을 허리가 뚝 끊긴 듯, 내려앉은 땅 속에 주택이 파묻혔다.

마을 지반이 내려앉은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 모습. 지난 19일 극한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지반이 침하, 마을 주택과 도로가 붕괴돼 흙 속에 묻힌 상태다. 사진 산청군


지진 난 듯 무너진 마을…“지금도 붕괴 중”

땅 꺼짐으로 지반이 기울면서 벽이 ‘쩍쩍’ 갈라지고 문이 열리지 않는 주택도 있다. 토사와 지반침하로 도로마저 유실되면서 마을 접근조차 쉽지 않다. 상능마을 주택 24채는 이번 산사태로 대부분 파손됐다. 13가구가 실제 거주하고, 나머지 주택은 주말 주택이나 빈집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아스파라거스 등을 재배하는 농민 홍씨는 “산사태가 발생한 야밤에 갈라진 땅과 땅 사이에 사다리를 놓고 건너며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는데, 5년 전부터 이 마을에 일군 3000평 농장이 모두 무너졌다”고 허탈해 했다. 이어 “지금도 지반이 침하되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상능마을은 추가 지반 붕괴 위험이 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이 지난 19일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에 토사가 쌓여 있다. 뉴스1


“마을 복구 불가능…집단 이주 추진”

이에 산청군은 마을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이 마을을 통째로 옮기는 ‘집단 이주’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마을 대체 부지를 마련해 그곳에 이주 단지를 꾸린 뒤 집단 이주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이주하게 될 상능마을엔 13가구 16명이 산다. 주민은 상당수는 70·80대 고령이다.

끔찍한 산사태 속에서 일부 주민이 마을에 고립된 적은 있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이들 주민은 지난주까지 임시거주시설인 생비량초등학교에 머물다 이번 주부터 모텔 등 숙박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마을은 추가 붕괴가 우려돼 곳곳에 쌓인 흙더미를 걷어내는 작업도 여의치 않다. 마을엔 진입 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김광연(57) 상능마을 이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도저히 사람이 들어가 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마을 기능을 상실했다”고 착잡해 했다. 이어 “마을 아래 토사를 치우기도 어렵다. 잘못 치우면 위에 쌓인 흙더미가 쏟아지거나 지반이 무너져 사람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로 향하는 도로(상능로)가 산사태로 쏟아진 토사 등에 묻힌 모습. 상능마을은 지난 19일 극한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지반이 침하, 마을 주택과 도로가 붕괴됐다. 사진 산청군


“평생 산 터전, 바라보며 살기라도…”

김 이장은 “어르신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고 자란 탓에 고향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이 보이는, 산사태 우려가 없는 아래 쪽에 이주 단지가 마련돼 ‘고향이라도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게 주민들 심정”이라고 전했다.

산청군은 경남도와 함께 중앙정부에 상능마을 집단 이주를 건의했고, 향후 이주 비용 등 필요한 예산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승화 산청군수는 “상능마을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주단지를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연 재해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주한 사례는 드물다. 경남에서는 22년 만이다. 2003년 거제시 일운면 와현마을 집단 이주가 유일하다. 당시 와현마을은 태풍 ‘매미’ 내습으로 큰 피해를 입어, 73가구 130여명이 거처를 옮겼다.



안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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