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하버드대학교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최대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지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협상에 정통한 복수 소식통들을 인용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4월부터 명문대를 대상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중단 등 강경 조치에 맞선 하버드대가 백기를 든 셈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정부에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엔 난색을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재정적 조건에 대해선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다만 외부 감시인 지정엔 대학의 학문적 자유를 침해하는 ‘레드라인(넘을 수 없는 선)’을 넘는 일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유대인 학생 보호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민권법 제6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모든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해왔다. 민권법 제6조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양측 간 협의는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합의 형식과 시점은 여전히 유동적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NYT는 “하버드대가 지난 4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연방 소송과 이번 합의를 연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조치를 중단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양측 간 협의가 성사될 경우, 하버드대의 합의금은 컬럼비아대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같은 이유로 행정부의 압박을 받아온 컬럼비아대 역시 지난주 행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벌금 2억 달러(약 2784억원)를 납부하는 대신 매년 12억 달러(약 1조6703억원) 이상의 연방 보조금을 다시 받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버드대가 반대 중인 외부 감시인 지정에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컬럼비아대 사례를 향후 다른 명문대들과의 협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 25일 “행정부가 컬럼비아대를 모델로 삼아 하버드대, 코넬대, 듀크대, 노스웨스턴대, 브라운대 등 다른 명문대학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해리슨 필즈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의 요구는 상식적인 수준”이라며 “반유대주의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이 캠퍼스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고, 모든 학생의 시민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명문대들의 적극적인 협의를 촉구했다.
다만 일각에선 당초 명문대의 이념적 성향 재조정에 초점을 뒀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재정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선회했다고 주장했다. 마이애미대 등 4곳의 대학교를 이끈 도나 샬랄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NYT에 “컬럼비아대의 합의는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대학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전형적 방식”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는 언제나 ‘승리’를 중심에 둔 거래와 협의를 해왔다”며 “따라서 협의에 들어갈 때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이념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양측 모두 승리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