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김모씨는 최근 옷장에 방치했던 헌 옷을 과감히 처분하기로 했다. 백화점의 중고 의류 매입 서비스를 이용해서다. 김씨는 “버리자니 아깝고 중고 플랫폼에 내놓기에는 손해를 볼 것 같아 고민했다”며 “입지 않는 중고 옷이 백화점 포인트로 전환된다니, 옷장 속 숨은 재테크가 따로 없다”라고 말했다.
콧대 높던 백화점들이 중고 거래를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중고 거래 시장이 점점 성장하면서다. 백화점 업계는 중고 의류 매입 서비스를 통해 중고 처분-신제품 구입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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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가세한 리커머스
29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이달 9일 런칭한 ‘바이백(Buyback)’ 서비스 이용자가 약 3주 만에 1000명을 넘어섰다. 바이백 서비스는 스타트업 ‘마들렌메모리’와 협업해 고객이 내놓는 중고 옷을 수거해 되파는 것이다. 마들렌메모리가 수거·검수·가격 책정·재판매 등을 맡는다.
고객은 홈페이지나 앱으로 130여개 브랜드의 옷을 팔고 시세 만큼의 금액을 백화점 포인트로 챙길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5월부터 두 달간 시범적으로 이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고객들의 호응이 좋아 이달 정식 런칭했다. 향후 백화점 점포 안에 중고 상품 매입 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롯데백화점도 지난 11일부터 비슷한 내용의 ‘그린 리워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명품과 신상만 취급하던 백화점 업계가 이처럼 중고 상품을 사고파는 리(re)커머스에 뛰어든 건 최근 소비 트렌드에 따른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발표한 ‘중고제품 이용실태 조사 및 순환유통 비지니스모델 혁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중고 거래 경험이 있는 20~50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가량(75.3%)은 중고 거래를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절반 이상(51.8%)은 ‘3년 전보다 중고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고 밝혔다. 거래 제품으로는 잡화(45.9%) 다음으로 의류(35.4%)가 많았다.
염민선 대한상공회의소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중고 거래에서 패션 분야의 약진이 특징”이라며 “의류 폐기물 환경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MZ(밀레니얼+Z세대) 주도의 중고 거래가 일상 소비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했다. 상공회의소는 글로벌 중고 패션 시장 성장률이 향후 3년간 48.7%로, 일반 시장(8.4%)의 6배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고 플랫폼 거래액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인된다. 번개 장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패션 거래액은 640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두 배로 뛰었다.
백화점 입장에서도 지속가능 경영 성과를 내면서, 고객 재방문을 통해 수익도 챙길 수 있어 나쁠 게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매장으로 고객을 유인하는 게 중요해졌다”라며 “리커머스 지급 포인트는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모두 쓸 수있지만, 이용 고객 상당수는 백화점에서 신상품을 직접 보고 구매한다"고 말했다.
패션 전문 업체들도 중고 시장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1500만명 회원을 보유한 무신사는 수거·검수·보상·판매 전 과정을 무신사 앱 내에서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무신사 유즈드’를 곧 시작한다. 그간 별도 앱(솔드아웃)에서 이런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해왔던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패션 기업 LF도 3분기 내 자사몰에서 중고 의류를 매입해 재판매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업계에선 일본 유니클로, 유럽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들이 리커머스를 전략으로 삼고 중고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