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주가 폭락”, “징벌적 손해배상”….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사망 사고 발생 기업의 책임을 물으며 나열한 표현이다. 이날 국무회의는 이례적으로 토론 과정까지 K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고, 거론된 기업은 7시간 만에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라는 회사에서 올해 들어 다섯 번째(실제론 네 번째)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지적했다. 전날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여 숨진 걸 지목한 것이다. 포스코이앤씨 사업장에선 지난 1월과 4월에도 총 3건의 추락·붕괴 사고가 발생해 모두 3명이 숨졌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해, 똑같은 방식으로 특히 사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며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을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다.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1시간 30분가량 산재 대책 토론을 벌였다. 이 대통령이 진단한 산재 원인은 “돈”(기업의 비용 절감)이었고, 해법도 “돈”(경제적 불이익)이었다. 이 대통령은 “산업 안전에 관한 기준들을 다 법에 정해놨다. 예를 들면 폐쇄 공간에 들어갈 때는 꼭 뭘 해야 된다는 온갖 게 다 있는데 안 지켜서 사고가 난다”며 “안 지킨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돈이 드니까”라고 지적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6월 23명이 숨진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에 대해 “대표에게 20년을 구형했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사망자 1인당 형량이) 교통사고 처리보다 별로 세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형사처벌은 아주 결정적인 수단이 못 되는 것 같다”며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건) 고의에 가까운데 ‘징벌 배상’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특정한 불법행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액을 물리는 제도다. 이 대통령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산재 사고가 안 줄어들면 진짜 직을 걸라”고 했고, 김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금융 규제도 언급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상장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시 중대재해 발생 이력을 더 엄격히 반영하는 방안을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적으로, 상습적으로 발생한다면 아예 그걸(ESG 평가를) 여러 차례 공시해 투자를 안 하게 되면 주가가 폭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재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경기지사 때부터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예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재계에선 ‘기업 군기 잡기’로 바라봤다. 특히 노란봉투법과 상법의 개정을 두고 기업이 불만을 제기한 직후라는 시점을 주목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 자신들이 지목될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라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목한 포스코이앤씨의 정희민 대표이사는 이날 오후 5시쯤 인천 송도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안전이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는 무기한 작업을 중지토록 했다”며 허리를 숙였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상호관세 유예 시한(다음 달 1일)을 앞두고 한·미 통상 협상이 난항지만 관련 이슈는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산재 관련 발언이 통상 협상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도 전략적 판단”이라며 “마무리 단계에 필요하면 직접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처음 참석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향해 “(국방일보가) 국방부 장관이 한 취임사를 편집해서 내란 언급은 싹 빼버렸다 그러더라”며 “기강을 잘 잡으셔야 할 것 같다. 심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