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맞서 또 한번 ‘이가 없으면 잇몸’ 전략을 선보였다. 구형 장비로 미세회로를 욱여넣은 인공지능(AI) 칩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칩 수백 개를 몰아넣은 AI 서버를 내놨다.
지난 28일 폐막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5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선 화웨이의 ‘비밀병기’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화웨이가 엔비디아를 겨냥해 지난 4월에 개발한 AI 서버 시스템인 ‘클라우드매트릭스 384’의 실물을 최초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화웨이 부스에 ‘어센드 384 슈퍼노드(昇腾384超节点)’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이 제품은 3000여개 전시품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선보인 8개의 ‘보물’ 중 하나로 선정됐다.
전시 기간 내내 어센드 384 슈퍼노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이목을 끌었다. 미국의 제재에도 중국이 엔비디아와 맞먹는 AI 서버를 자체 개발했다는 점에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5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는 엔비디아의 최신 시스템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화웨이는 기술적 한계를 칩 개수로 밀어붙였다. 서버에 자체 AI 칩 ‘어센드 910C’를 384개나 탑재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대표 AI 서버인 ‘GB200 NVL72’가 블랙웰 칩 72개를 탑재된 것과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개별 칩 성능은 엔비디아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결과적으로 NVL72보다 약 1.7배 높은 서버 성능을 구현해냈다.
반도체 연구 기관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화웨이가 개별 칩의 낮은 성능을 고급 네트워킹 기술을 통해 보완해냈다”고 분석했다. 앞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도 “어센드 칩이 미국 제품보다 한 세대 뒤처져 있지만 클러스터링을 통해 최첨단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막대한 전력 소모량이다. 어센드 384 슈퍼노드는 599킬로와트(㎾)를 소비해 엔비디아 NVL72보다 4.1배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전력 효율성을 고려한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서버인 셈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선 전력 소비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풍부한 전력을 고려할 때 엔비디아의 최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중국 고객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이러한 ‘우회 전략’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화웨이는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입이 막히자 구형 심자외선(DUV) 장비만으로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다만 5나노 공정 양산에 어려움을 겪고, 10억 달러 이상의 엔비디아 AI칩이 중국으로 밀수된 정황이 포착되는 등 반도체 자립 전략의 한계도 노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