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의 명확한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등, 일본·EU 같은 주요국을 중심으로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하는 디지털 자산과 관련한 규율 체계를 정비했기 때문에 이에 발 맞추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우리나라는 주요국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 원화는 달러화, 엔화, 유로화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닐 뿐만 아니라, 역외 외환시장에서 현물로 거래가 불가능하다. 역외 외환시장이란 한국 영토 밖에서 외국 통화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런던, 뉴욕, 싱가포르의 외환시장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글로벌 금융중심지에서 주요국 통화는 24시간 자유롭게 거래된다. 반면 원화는 특정 시간 동안 정해진 기관을 통해서 한국 내 시장에서만 환전할 수 있다. MSCI 선진국 지수에 국내 주식시장이 편입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유통
24시간 역외시장 허용하는 효과
외환시장 관리 무력화할 가능성
원화 국제화 속도 맞춰 추진해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유통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24시간 원화를 구매하거나 환전할 수 있어 기존 외환시장 관리체계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고민해야 할 문제는 원화가 국제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유통이 외환 정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무엇인가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승호 선임연구위원은 ‘원화 국제화의 효용 및 리스크에 대한 재고찰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통화 국제화(currency internationalization)를 “자국 통화가 지급수단·가치저장·계산단위라는 화폐의 기능을 해외에서도 수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BIS에 따르면 2022년 국제무역 결제 비중은 달러 약 50%, 유로 22%, 엔화 6%로 나타나며, 외환보유액 구성에서도 달러가 60%, 유로 20%, 엔화 3% 정도 차지한다. 유로화와 엔화가 달러화와 함께 3대 글로벌 통화인 이유다. 반면 원화는 전 세계 기준으로 사용량이 미미하여 단독으로 통계가 보고되지 않는데 모든 지표에서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완전 국제화가 아니더라도 호주 달러, 싱가포르 달러, 홍콩 달러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교환성 통화(convertible currency) 또는 부분 국제화 통화로 자유롭게 거래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원화는 역외 거래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원화 연계 금융상품조차 글로벌 시장에선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원화 국제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래 이루어졌음에도 큰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던 급격한 외환유출 트라우마 때문이다.
원화 국제화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원화 국제화는 비거주자의 환투기 공격을 용이하게 하여 환율 변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원화의 해외 사용이 늘어날 경우 복수의 역외 원화외환시장이 형성되어 우리 당국의 환율 모니터링이 어려워지고, 외환정책의 통제권을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셋째, 원화 국제화는 우리나라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유통을 허용한다는 것은 결국 원화 국제화의 숙원 과제인 원화의 역외시장 거래를 24시간 허용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원화 국제화를 달성한 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유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같은 속도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통화 국제화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통제되지 않은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원화 거래는 오히려 환율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외 원화 스테이블 코인 가격은 공식 환율의 선행지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언제든지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원화를 거래할 수 있으므로, 미국 FOMC 결과나 전쟁 등 한국시각 외의 정보나 이벤트가 발생하면 이를 즉각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 반영시킬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역외 원화값은 다음 영업일 국내 환율의 움직임을 예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원화 국제화와 함께 외국환거래법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을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최은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 따르면 가상자산을 이용한 외환 서비스에 대한 명확한 규제와 모니터링이 부재하여 불법 외환거래와 자금세탁이 증가하고 있고, 최근 4년간 외환범죄 적발금액 중 가상자산 관련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관련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가져올 거시경제적 이득과 비용을 면밀히 따져 통화정책·외환정책과 조화되는 운영규칙을 수립하며, 기존 법체계와 제도 정합성을 높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이 이러한 도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디지털 금융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도 금융안정을 지키고 원화 국제화의 초석을 놓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