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추가시간은 5분이 주어졌지만, 100분이 되도록 종료 휘슬이 불리지 않았다. 김상식 감독도 참지 못하고 항의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그래도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3 대표팀은 2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아세안축구연맹(AFF) 23세 이하(U-23) 챔피언십(만디리 컵) 결승전에서 개최국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과감한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김상식 감독은 역전승을 거뒀던 필리핀과 준결승에서 선발 출전했던 11명을 이번에도 그대로 선발 기용했다. 앞서 베트남 해설가 꽝 후이는 "김상식 감독은 선수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누가 강하고 약한지 잘 알고 있다"라고 칭찬했던 바 있다.
김상식 감독은 실리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체력 면에서는 베트남이 4강에서 승부차기 혈투를 겪고 온 인도네시아보다 유리하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 실제로 초반 분위기는 압도적인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인도네시아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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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제골은 베트남의 몫이었다. 전반 37분 왼쪽에서 올라온 코너킥을 뒤 팜 리 득이 머리에 맞혔고, 높이 떠오른 공이 떨어지면서 혼전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흘러나온 공을 응우옌 꽁 프엉이 날카로운 슈팅으로 연결, 골망을 갈랐다.
후반전은 더욱 치열했다. 양 팀은 거친 반칙도 서슴지 않으며 여러 차례 신경전을 펼쳤다. 베트남 선수가 위험한 태클로 경고를 받고, 인도네시아 선수가 베트남의 응우옌 딘 박의 목을 조르는 듯한 모습도 나왔다.
인도네시아는 경기 막판까지 롱스로인을 통해 동점골을 노려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계속된 신경전 탓인지 일본의 다카사키 코지 주심은 좀처럼 경기를 끝내지 않았다. 처음 선언된 추가시간은 5분이었으나 종료 휘슬이 불린 건 101분이 넘어서였다.
추가시간 막판 인도네시아의 롱스로인이 계속되자 김상식 감독도 폭발했다. 그는 심판진을 향해 왜 경기를 끝내지 않느냔 제스처를 취하며 항의하다가 경고를 받았다. 이에 김상식 감독은 연달아 두 손을 모은 채 깊게 허리 숙여 사과했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비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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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 익스프레스'는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김상식 감독의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보복하며 불필요한 싸움을 일으켰다. 뜨거운 열기는 피치 라인 밖에서도 이어졌다. 추가시간이 11분까지 이어지자 김상식 감독은 일본 주심에게 옐로카드를 받고 절을 할 정도로 크게 화가 났다"라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코치는 아예 레드카드를 받기도 했다. 매체는 "인도네시아 보조 코치는 사이드 라인 부근에서 물병을 걷어차는 등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했고, 퇴장당했다"라며 "경기 종료 휘슬이 불렸을 때 베트남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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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베트남은 2022년과 2023년 우승에 이어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2005년부터 시작된 대회 역사상 최초 기록이다. 동시에 베트남은 통산 우승 기록도 3회로 늘리며 인도네시아(1회)와 격차를 더욱 벌렸다. 게다가 지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결승에서 인도네시아를 무너뜨렸기에 더욱 달콤한 승리였다.
또한 김상식 감독은 동남아 축구선수권대회(미쓰비시컵)과 AFF U-23 챔피언십을 모두 제패한 최초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작년 5월 베트남에 부임한 뒤 지난 1월 2024 미쓰비시컵 우승을 일궈낸 데 이어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는 인도네시아를 지휘했던 신태용 감독과 베트남 전임 감독인 박항서 감독도 이루지 못했던 대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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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축구 역사를 쓴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다. '베트남 익스프레스'는 "겔로라 붕 카르노의 뜨거운 압력은 베트남 선수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 김상식 감독의 제자들은 수비적인 역습 전술을 바탕으로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고, 전반 종료 직전 터진 응우옌 꽁 프엉의 결승골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라고 조명했다.
'베트남 넷' 역시 "U-23 베트남은 대회 3연패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라며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꺾은 이번 승리는 김상식 감독과 그의 팀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데 도움이 됐다. 아울러 동남아 지역에서 베트남 유소년 축구의 선두 자리를 굳건히 했다"라고 박수를 보냈다.
다시 한국인 지도자 열풍이 불고 있는 베트남이다. 베트남 축구는 지난 2023년 '쌀딩크' 박항서 감독이 떠난 뒤 부침을 겪었다. 야심차게 선임한 필립 트루시에 감독 밑에서 부진을 거듭했기 때문.
그러나 베트남은 김상식 감독과 함께 동남아 축구의 패권을 다시 가져오고 있다. 베트남 넷은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끈질기게 싸워 승리를 지켜냈다"라며 "김상식 감독은 A대표팀과 U-23 대표팀에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면서 역사를 썼다. 그의 업적은 전임 사령탑인 박항서 감독의 업적을 뛰어넘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