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을 데드라인으로 둔 한·미 관세 협상과 맞물려 미·중 사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좌표'가 예상보다 빨리 설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 투자 등 경제적 요소도 결국 안보 구상과 맞닿아 있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관심사인 대중 견제에 한국이 얼마나 동참하느냐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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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FTA-기술이 세 개의 기둥"
3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일본에서 전날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외상, 이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만난 뒤 현지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양국 관계를 '세 개의 기둥'에 비유했다. "첫 기둥은 안보 동맹, 두 번째 기둥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적 번영, 세 번째 기둥은 기술 협력"이라면서다. 이어 "큰 틀에서 한·미 관계를 보고 장기적인 발전 차원에서 원만하게 (관세 협상이) 타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는 양국 관계의 근간이 안보 동맹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최근 부상한 기술 협력까지 아우르며 관세 협상도 큰 틀의 동맹 강화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이날 미국으로 떠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과 회담할 예정이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루비오 장관을 만나고 귀국한 지난 9일 "동맹의 '엔드 스테이트'(End State·최종 상태)까지 시야에 두고 협상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위 실장은 지난 20일에도 방미를 마친 뒤 "무역·통상·안보·동맹 등 한·미 관계의 전반에 걸쳐 총론적 협의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관세 협상이 동맹의 거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만큼 평소 위 실장이 강조하던 '한국형 외교 좌표'가 처음으로 협상 결과와 함께 윤곽을 드러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맹의 팔도 서슴없이 비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차별 관세 정책의 칼끝은 결국 중국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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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정책 본질은 중국 견제
이와 관련, 지난 2일 상호 관세 20%로 타결된 미국과 베트남 간 합의에서도 '제3국'이 베트남을 경유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에는 4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산 우회 수출을 겨냥한 조치다. 트럼프식 관세 정책이 무역 적자 해소라는 대외적 명분 뿐 아니라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도 깔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패키지 딜’을 내세워 안보 분야에서 '성의'를 보이겠다는 구상을 마련한 한국은 트럼프의 대중 견제 구상에 더 깊숙이 관여하라는 청구서를 받을 수 있다. 방산 협력 확대뿐 아니라 큰 폭의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논의를 포함한 동맹 현대화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미국의 요구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지닌 핵심 레버리지로 부상한 조선업 협력도 결국 본질은 중국 견제에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동맹·우방과 조선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대만과 남중국해 유사시 중국과 충돌에 대비해 아시아 지역에 선박 MRO(유지·보수·정비) 거점을 세우려는 구상과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지난해 5월 공개된 미 국방부의 '지역 유지보수 프레임워크'(RSF)에는 "전투원(warfighter)이 필요한 곳에서 MRO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투 영역 전반에 걸친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고 명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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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협력으로 유사시 대비"
이와 관련, 조원득 국립외교원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는 “현재 미 해군이 일본, 괌, 싱가포르 창이 해군기지 등에서 일부 MRO 지원을 하고 있지만 유사시 작전을 위한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한국 기업이 필리핀 등에서 조선소를 확보한다면 미 해군이 한국의 MRO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미 해군의 작전 능력은 한층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터 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지난해 12월 '인도·태평양 동맹 조선산업'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은 대국 간 충돌 시 새 전투함을 신속하게 대량 건조하거나 손상된 전투함을 빠르게 수리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미 국방부는 MRO 허브를 일본·한국·호주·싱가포르·필리핀 등에 두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런 움직임에 벌써 견제구를 날렸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28일 조 장관과 첫 통화에서 "중·한 관계는 어떤 제3국을 겨냥하지도 않으며, 어떤 제3국으로부터 제한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한 경제 연계는 밀접하고 산업·공급망이 고도로 융합돼 있다"며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혜자로서 양국은 함께 디커플링에 반대해야 하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함께 지켜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한·미 ‘패키지 딜’ 협상을 염두에 두고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에 동참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