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적에 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인 지동식(池東植·1910~1977) 교수(목사)를 가까이서 모시고 인생을 배운 인연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전택부(全澤鳧) 선생과 처남 매부 사이였다. 어느 날 지 목사님은 우리의 허례에 찬 혼례의 폐단을 걱정하며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지 목사님은 교편 시절에 국문학과의 김윤경(金允經·1894~1969·사진) 선생과 자별한 사이였다. 어느 날 지 목사님은 김 교수의 따님 혼사를 알리는 청첩장을 받았다. 그러나 불가피한 일이 생겨 참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이 지나 양해를 구하며 인사를 드렸더니, 김윤경 교수께서 답변하기를 “나도 못 갔다우” 했다. 너무 놀란 지 목사께서 왜 따님 결혼식에도 못 가셨느냐고 물었더니 김 교수는 천연스럽게 “강의 시간과 겹쳐서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연세대 식구들 사회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내가 이런 말씀을 들었을 때 젊은 나이였고, 애들도 어린 터였는데도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막상 내 자식들 혼인 때가 되니 두 분에 얽힌 얘기가 더욱 짙게 다가왔고, 자식의 혼인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 것인지, 교수가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짐할 때면 두 분 일화를 다시 되새기곤 했다.
확신하건대, 자녀들의 결혼에는 부모들이 마음을 바꿔야 하며, 특히 아들 둔 부모가 마음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혼기를 놓치거나 마음 내키지 않게 헤어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모의 과도한 요구 때문이다. 아들 둔 게 유세이던 때는 지났다. 상견례에서 딸 둔 부모가 문간 쪽에 앉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아들 장가갈 때 나는 사돈에게 “칫솔 하나만 보내시라” 했고 학과 교수는 물론 내 조교도 내 집 혼사를 몰랐다.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자랑으로 들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