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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타결] 트럼프, '고무줄 관세'로 압박…막판에 등판해 美이익 극대화

연합뉴스

2025.07.3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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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장의 힘' 최대한 활용해 韓 비롯해 日·EU 등과 새 무역협상 타결 각종 변칙 전술로 '협상가 기질' 여실히 보여주며 상대 양보 끌어내
[관세타결] 트럼프, '고무줄 관세'로 압박…막판에 등판해 美이익 극대화
'미국시장의 힘' 최대한 활용해 韓 비롯해 日·EU 등과 새 무역협상 타결
각종 변칙 전술로 '협상가 기질' 여실히 보여주며 상대 양보 끌어내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김동현 특파원 = 한국이 미국과 30일(현지시간) 새로운 무역 협상을 타결하면서 그간 미국이 체결한 통상 합의에서 드러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의 국력과 전세계 단일 시장으로 가장 규모가 큰 미국 시장의 위력을 한껏 활용, '고무줄 잣대'로 관세 회초리를 휘두르며 협상을 주도하는 한편 최종 합의 때는 직접 나서서 미국에 최대한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해 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뚜렷한 원칙이나 셈법 없이 관세율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는가 하면, 관세율을 늘렸다가는 줄이기를 반복하고, 관세 부과 유예 시한도 몇 차례 연장하는 등 각종 변칙 전술을 활용한 끝에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무역 파트너로부터 대규모 투자 등 양보를 끌어냈다.
그간의 협상 상황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지점이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우위에 서는 협상판을 짠 것이 눈에 띈다.
이는 거대 소비시장인 미국에 제품을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경제 구조가 고착화해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게 된 무역 파트너들의 최대 약점이 관세라는 점을 파고든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미국 해방의 날'로 지칭한 지난 4월 2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발효일인 같은 달 9일 '관세 부과 90일 유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무역 상대국들은 7월 9일까지 남은 시간이 미국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상호관세 발표 후 뉴욕 증시가 폭락하는 등 강경 관세정책으로 인한 우려가 커지자 급하게 관세부과 유예를 발표하면서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에 더 큰 해악을 끼칠 것으로 판단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서로 100%를 훌쩍 뛰어넘는 관세전쟁을 벌이다 휴전에 합의했고, EU를 향해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다며 6월 1일부터 50%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가 입장을 번복했다.
이처럼 고율의 관세 부과를 위협한 뒤 물러서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두고 미국 월가에서는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뜻의 말을 줄인 '타코'(TACO)라는 조롱성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 관세 정책 자체가 위협받기도 했다. 미 연방 국제통상법원이 지난 5월 28일 상호관세 시행을 금지하는 판결을 하면서다.
하지만, 연방 항소법원이 사흘 만에 이를 뒤집어 상호관세 정책을 일시 복원하는 것을 명령하고, 6월 10일에는 본안 심리가 끝날 때까지 상호관세 효력을 지속할 수 있다고 결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정책은 날개를 달았다.
다만, 한 차례 연장한 관세 부과 유예 시한인 7월 9일까지 미국이 협상 타결에 성공한 국가는 영국 하나뿐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7월 7일 재차 새로운 초강수를 뒀다.

일본과 한국을 시작으로 이른바 '관세 서한'을 보내 관세율을 다시 일방 설정하는 한편 관세 시한을 8월 1일로 못 박았다.
서한 발송 순서를 정하면서 주요 무역국의 대미 수출 경쟁 관계를 적극 활용하며 고강도 압박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설정한 관세율은 그야말로 들쭉날쭉했다. 한국은 25%로 그대로였지만, 일본은 24%에서 25%로 높아졌다. 대부분 국가가 4월 2일 받은 관세율보다 낮아졌지만, 브라질의 경우 기본관세 10%에서 50%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 국가들의 움직임은 이 시점부터 급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대미 수출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미국과 합의를 이루려고 협상에 속도를 냈다.
우선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의 협상 타결 소식이 먼저 나왔다.
이어 일본도 지난 22일 전격적으로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했다. 일본의 경우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정권 유지의 명운이 걸린 참의원 선거 국면에서 "깔보는데 참을 수 있나"라고 말하며 큰소리를 쳤지만, 미국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및 미국산 에너지 구입 등의 양보를 하며 협상을 마무리했다.
EU도 미국에 대한 보복 조처를 만지작거리면서도 결국 굴복한 모습이었다. 일본이 15%의 관세율에 합의하자 EU 역시 지난 27일 대규모 대미(對美) 투자 및 에너지 구입을 조건으로 관세율을 30%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 품목에서 대미 수출 경쟁을 벌이는 한국은 더욱 급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해 협상에 전방위 총력전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교역국과의 최종 협상 타결 직전에 직접 나서 협상을 마무리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일본 협상단을 백악관으로 불러 더 많은 양보를 압박한 끝에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를 애초 일본이 제시한 4천억 달러에서 5천500억 달러로 더욱 늘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 일본과 협상 타결 후 댄 스커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애초 제안한 4천억 달러라는 숫자를 지우고 손으로 5천억 달러라고 적은 게 보이기도 했다.
EU와의 합의도 자신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때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직접 만나 합의를 끌어냈다.
이날 한국과의 협상 타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어김없이 구 부총리와 김 장관, 여 본부장을 백악관에서 만났고, 면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합의 내용을 가장 먼저 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협상단을 만나 일본과 최종 담판에서 했던 것처럼 합의문의 수치를 직접 수정하지는 않았지만, 협상 진행과정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한국이 제안한 투자액 규모를 올리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한국이 애초 준비한 대미 투자액은 한미 합의 결과 도출된 3천500억 달러보다 낮았다고 확인했다.
김 장관은 일본처럼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숫자를 수정했는지를 묻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오케이 사인해주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그게 왔다 갔다 하면서 금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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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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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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