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제개편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코스피 5000’ 공약을 내건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세제 개편이었다. 새롭게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당초 시장이 기대하던 수준에선 요건과 효과 모두 후퇴했다. 이와 함께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이 강화되고, 증권거래세가 0.2%로 인상되면서, 시장에서는 “코스피 5000에 역행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앞으로 배당성향이 높거나 배당을 늘린 기업으로부터 받는 배당에 대한 세금은 종합과세하지 않고 분리과세해 별도의 세율을 적용한다. 구체적인 기준은 ▶전년 대비 현금배당액이 감소하지 않고 ▶배당성향이 40% 이상이거나 배당성향이 25% 이상인데 직전 3년 평균 대비 5% 이상 배당이 증가한 상장법인이 대상이다. 당초 배당은 종합과세 대상으로 최고세율 45%(지방세 제외)를 적용했으나 세제가 바뀌면 ▶2000만원 이하는 14% ▶2000만~3억원은 20% ▶3억원 초과는 35%를 적용한다.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49.5%의 고율을 적용받던 초고액 배당자나 대주주는 38.5%의 분리과세 세율을 적용받아 약 11%포인트가량 세금이 줄어든다. 해당 제도는 배당을 결정하는 대주주에게 세금 혜택을 줘 배당 유인을 높이고, 상장법인의 배당을 높이자는 취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최근 10년(2014~2023년간) 배당성향은 26%로, 대만(55%), 미국(42.4%), 일본(36%) 등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초 입법을 기대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 안에 비해 최고세율이 25%에서 35%로 10%포인트 높아졌기 때문이다. 적용 조건도 강화됐다. 이소영 의원 안은 배당성향 35% 이상이라는 단일 기준이었지만, 정부 안은 이를 배당성향 40% 이상으로 올렸고, 배당성향 25% 이상이면서 3년 평균 대비 5% 이상 배당을 늘린 기업도 추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5% 세율은 배당 촉진이라는 정책 목표가 있지만, 대주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당소득이 100억원인 주주의 경우 기존에는 44억9400만원의 세금을 냈지만, 제도 개선 이후(정부안 기준)에는 약 10억4000만원이 줄어 34억5400만원만 부담하게 된다. 기획재정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번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약 350개로 세수 감소 효과는 약 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책 목표가 배당 확대인 만큼 인센티브를 제대로 줘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임의로 줄여버리면 세금만 줄고 실질적인 효과는 덜할 것”이라며 “‘혜택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10%포인트를 낮춘 것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종목당 보유금액 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작지 않다. 비록 개인 투자자에게 직접 적용되는 사안은 아니지만, 연말마다 과세를 피하려는 대주주들이 주식을 팔았다가 연초에 다시 매수하는 거래가 반복돼 시장 변동성이 커진다는 우려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는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과 이소영 의원 등 ‘코스피 5000시대’를 내세우는 측은 대주주 기준 강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후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소영 의원은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해 “배당 증가라는 2차 효과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세수는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부자 감세 우려가 있고, 세제를 통해 증시를 부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하고 있다.
모든 주식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증권거래세도 인상한다. 코스피와 코스닥 거래세율이 모두 0.2%로 0.05%포인트 올라 2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거래세는 이번 세제 개편에서 법인세 다음으로 큰 세수 확보가 기대되는 항목이다. 기획재정부는 향후 5년간 약 11조 5000억원의 세수가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세 인상은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 등 유동성 공급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거래대금이 줄면 전체 세수가 오히려 감소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이번 세법 개정을 통해 구글이나 애플 등 빅테크 기업에 추가로 세금을 물릴 수 있는 일명 ‘구글세’ 근거도 마련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을 통해 글로벌 최저한세 내국추가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내국추가세는 연결매출액이 7조 5000억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그룹 소속 국내 구성 기업의 소득에 대해 글로벌 최저한세율인 15%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경우 부족 과세분을 한국에서 우선 과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