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년 전 내렸던 법인세를 다시 올린다. 올해까지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확실해진 상황에서 세입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보험업 교육세를 인상하고, 증권거래세를 0.2%로 되돌리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 정부가 추진했던 감세 기조를 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3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2025년 세제개편안’을 의결했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크게 ▶경제 강국 도약 지원 ▶민생안정을 위한 포용적 세제 ▶세입기반 확충 및 조세제도 합리화 등 세 파트로 구성했다. 세수를 늘리고, 미래전략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게 큰 방향이다. 각론에서 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민감한 세금은 건드리지 않았다.
핵심은 법인세 인상이다. 구간별로 ▶2억원 이하는 9%→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19%→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 21%→22% ▶3000억원 초과 24%→25%로 조정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구간별로 1%포인트씩 인하한 걸 되돌리는 형태다. 전 구간 인상에 따라 중소∙중견기업도 모두 영향을 받게 됐다.〈중앙일보 7월28일자 1면 참고〉
최고세율만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하다 전 구간 인상으로 선회한 건, 전 정부의 잘못된 법인세 감세를 되돌리는 차원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다. 박금철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중소기업 부담이 늘어나는 건 맞다”라면서도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제도 일몰을 연장하는 등 다른 수단을 함께 담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보험업에 부과하는 교육세도 인상한다. 지금은 수익금액(매출)의 0.5% 일괄적으로 부과하는데 1조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1%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교육세는 1981년 교육재정 마련을 위해 한시적으로 신설한 목적세다. 이후 금융보험업이 크게 성장한 만큼 과세 체계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1조원 초과 구간 신설에 따라 상위 약 60개 금융보험회사의 세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세제개편안 중에서 법인세, 증권거래세 인상 다음으로 세수 효과(1조3000억원)가 크다.
오래전부터 은행의 과도한 예대마진 추구를 비판해 온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2023년 금융권의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던 이 대통령은 최근에도 “은행이 이자 놀이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수익과 교육 재원은 관련이 없다”며 “애초에 목적세 취지에 부합하지 않아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이걸 더 강화하겠다고 나서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꾸준히 낮춰온 온 증권거래세도 2023년 수준인 0.2%로 인상한다. 현재 0.15% 수준에서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0.05 %포인트 올리는 방안이다. 금융투자소득세 시행과 연계한 인하였는데 금투세 도입이 무산됨에 따라 거래세 역시 되돌려야 한다는 명분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소득 기반의 보편 과세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려면 금투세를 보완한 대체 입법을 추진하는 게 정공법”이라며 “주가 부양을 외치면서 사실상 통행세나 마찬가지인 거래세를 다시 올리는 건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세제개편안 발표에 앞서 “복지 수요 급증, 국가 간 미래 먹거리 경쟁 등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낮은 조세부담률, 감세정책으로 인한 국세 수입 감소,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적 세입기반 약화 등도 강조했다. 향후 추가 증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증세 공감대가 있는 상황에서 정권 초반에 나름대로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는 시각과 “세제는 예측 가능성이 핵심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엇갈린다.
이번 세제 개편에 따라 내년부터 2030년까지 35조6000억원가량의 세수가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세수 확대를 통해 늘어나는 재정으로 미래전략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엔 인공지능(AI) 분야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고, AI 혁신 생태계 조성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면 30~50%의 연구개발(R&D) 공제율을 적용하고, 투자세액공제율도 최대 30%까지 높아진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운송수단 기술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웹툰 세액공제 등을 신설해 K-콘텐트를 육성하는 지원책도 담겼다.
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 조합원에게 적용하는 예탁금·출자금 비과세 혜택은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1976년 관련 제도가 생긴 지 49년 만이다. 현재 상호금융 조합원은 예탁금 3000만원, 출자금 2000만원까지 이자 및 배당소득세(14%)를 면제받고 농어촌특별세(1.4%)만 내고 있다. 하지만 농어민이 아닌 일반인도 출자금 몇만원만 내면 준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총급여가 5000만원을 초과하는 준조합원은 내년부터 이자·배당금의 5%, 2027년부터 9%가 단계적으로 과세된다.
상호금융 비과세 축소 정도를 제외하면 조세지출(세액공제 등 세금 감면 및 비과세) 구조조정 부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컨대 올해 일몰을 맞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약 4조4000억원)는 이번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세원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달성된 만큼 폐지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만, 자녀 수 따른 소득공제를 확대하면서 도리어 늘어났다. 조세지출은 올해 약 78조원 규모로 최근 2년 동안 약 8조원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세수는 약 87조원 감소했다. 깎아주는 세금이 세수 기반 약화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코스피 5000을 외치면서 증권거래세를 인상한 점,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도입하며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강화한 점 등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산업재해를 지적했다가, 다음날 배임죄를 완화를 언급하더니 다음 날 또 법인세를 인상했다”며 “기업에 대한 시각 자체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수 확충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세제의 문제점을 고치고 여러 계층에게 부담을 골고루 분담시키는 방향성이 중요하다”며 “법인세를 올려 기업에 부담을 집중시켜 놓고 개인 소득공제 확대, 학원비 세제 지원 등을 담은 건 포퓰리즘 증세”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