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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시선] 공직자 갭투자,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중앙일보

2025.07.31 08:16 2025.07.3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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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재개발 부동산을 둘러싼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전직 청와대 대변인이 차관급 고위 공직자로 돌아왔다. 지난달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새만금개발청장으로 임명한 김의겸 전 의원이다. ‘흑석 선생’이란 별명을 가진 김 청장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전북 군산 지역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인물이다.

이런 지역 연고를 제외하면 김 청장에게 무슨 전문성이 있다고 대규모 국책사업을 책임지는 자리를 맡겼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새만금은 전북 군산·김제·부안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사업 부지의 총면적(409㎢)은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140배가 넘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 청장과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에 대해 “국민이 화나라고 일부러 이렇게 모아놓은 것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새만금청장에 ‘흑석 선생’ 김의겸
과거 고액 대출 낀 갭투자로 물의
부동산 이중잣대에 상실감 커져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이 지난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청장은 얼마 전 국회에서 취임 인사를 하며 불편한 신고식도 치렀다. 지난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다. 새만금개발청은 국토교통부 산하 행정기관이다. 이날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김 청장의) 흑석동 투기로 온 국민이 분노했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다”며 “국민의 세금을 (개인의) 재테크에 간접 지원했다는 게 명백히 드러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그렇게 했는데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우리 상임위원회(국토위원회)에 버젓이 앉아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6년 전 김 처장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었을 때 불거졌던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재개발 구역 투기 논란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잠시 예전 상황을 되짚어 보자. 김 청장은 2018년 1월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9년 초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흑석뉴타운 9구역에서 2층짜리 복합건물(상가+주택)을 25억7000만원에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이 집을 사기 위해 배우자 명의 은행 대출(10억2080만원)과 함께 개인 채무(3억6000만원)까지 끌어왔다. 여기에 세입자의 임대보증금(2억6500만원)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본인 투자금은 10억원이 채 안 됐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해당 부동산을 팔고 시세 차익은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이런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는 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자 방식이다. 물론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투자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김 청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책(『김의겸의 단심』)에서 “나로서는 억울했고 할 말도 많았다”며 “평생을 세 들어 산 내가 어쩌다 투기꾼 소리를 듣게 됐나. 씁쓸하기 그지없었다”고 적었다.

법적으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도의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부동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이중잣대였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갭투자를 죄악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핵심 인사가 실거주 목적이 아닌 재개발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게 여론 악화에 불을 붙였다. 더구나 갭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인근 관사로 이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국민 세금까지 활용한 ‘관사 재테크’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김 청장 소유 부동산이 있던 흑석 9구역은 ‘디에이치 켄트로나인’이란 대단지 아파트(21개 동, 1536가구)로 변신해 2029년 입주 예정이다.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이 청와대 대변인 시절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흑석 뉴타운 9구역' 소재 복합건물. 뉴스1
현재는 김 청장처럼 고액의 은행 대출을 낀 재개발 갭투자는 불가능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6·27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제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 매수에는 전혀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실거주 목적이라도 대출 한도는 6억원으로 제한된다.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청년 세대 사이에선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과거 김 청장의 갭투자가 가능했던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의 대출 규제가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김 청장을 이재명 정부가 다시 기용했다면 한 가지 입장은 분명히 밝혀주길 바란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재개발 갭투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다. 과거 김 청장의 갭투자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갭투자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이 갭투자를 죄악시하는 것이라면 김 청장 같은 인물을 고위 공직자로 기용해선 안 될 것이다. 만일 과거 김 청장의 갭투자는 봐주고 현재의 갭투자는 봉쇄하겠다고 한다면 최악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이중잣대야말로 국민에게 큰 혼란과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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