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풀스택(AI Full-stack)’은 인공지능 개발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데이터 수집·전처리부터 AI 모델 개발과 학습, 배포, 그리고 최종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 AI 기술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는 기술 스택을 의미한다. AI 풀스택은 단순히 특정 도구나 기술의 조합이 아니라 AI 비즈니스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AI 반도체 등)와 소프트웨어(AI 모델,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 등), 그리고 최종 서비스까지 모든 단계를 포함하는 생태계를 가리킨다. AI 풀스택을 완비한 나라는 미국과 중국 정도이며, 한국도 그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종종 거론된다. 실제로 한국은 AI 반도체부터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거의 완전한 AI 생태계를 갖추고 국민의 디지털 수용성이 높다.
생산 포기론 이겨낸 제조업처럼
실패해도 직접 개발한 경험 중요
소버린·수직적 AI 동시에 추구를
폴리텍대, 제조업 AI 전환 허브로
인재, 기초학문 저변부터 넓히고
정부는 조급한 성과주의 버려야
소버린 AI냐 수직적 AI냐?
그러나 AI가 국가안보나 경제 패권의 핵심 요소이기에 이 기술의 통제권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것의 위험은 없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미·중 패권경쟁의 배경이며 소버린 AI(Sovereign AI) 개념이 주목받은 이유다. 소버린 AI란 한 국가나 조직이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으로 AI 역량을 구축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AI 기술의 통제권을 외부 거대 기업이 아닌 자국 내부에 두겠다는 접근이다.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능력과 인재를 보유한 미국의 빅테크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AI 혁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기술 주권과 데이터 주권을 확보한 소버린 AI를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수직적 AI(Vertical AI) 개발에 주력하자는 주장의 근거다. 수직적 AI란 특정 산업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범용적으로 모든 질문에 답변하는 거대 언어 모델(예: GPT-4 같은 모델)과 달리, 의료·금융·법률 등 개별 도메인의 전문 지식과 데이터를 집중 학습해 해당 분야에서 높은 성능과 신뢰도를 내는 AI다. 모델 크기가 비교적 작아도 한정된 범위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정확도를 기대할 수 있고, 도메인 특화 데이터는 공개 인터넷 데이터보다 품질 관리가 잘 돼 있으며 프라이버시 문제가 적어 활용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처럼 언어 시장 규모가 제한된 나라가 곧바로 GPT-4 같은 범용 AI로 글로벌 경쟁을 펼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반면 의료 진단 AI나 금융사기 탐지 AI처럼 특정 문제 해결형 AI는 비교적 빠르게 상용화해 성과를 낼 수 있다.
AI는 앞으로 국부(國富)와 안보의 핵심 기반이 될 영역이다. 이를 타국의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국가 경제와 안전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험이 있다. 또한 범용 AI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주도하려면,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하며 부딪혀보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도전 없이 성과도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직접 만들어본 나라와 시도조차 못 한 나라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반도체 국내생산 포기할 뻔 실제로 1980년대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기보다 글로벌 분업 구조에 편입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국산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려 한 적이 있다. 1980년대에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 할 때도 “굳이 직접 생산하지 말고 수입하자”는 논리가 되풀이되었다. 직접 개발에 뛰어들어 얻는 학습 효과를 통해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그 산업과 연계된 부문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결국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임자, 해 봤어?”라고 되묻는 도전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도전 과제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며, 이러한 과감한 도전은 수직적 AI 기술의 발전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AI는 각종 영역의 문제 해결을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도구다. 이 도구의 필요성은 각종 산업현장에 있다. 이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는데 뛰어난 도구를 가져다준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소버린 AI와 수직적 AI를 독립된 것이 연결되어 시너지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AI 인력 수요는 광범위하고 다양 AI 기술 패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재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뛰어난 AI 인재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수조 원을 아끼지 않는다. 메타는 미국 AI 스타트업 ‘스케일AI’에 약 20조 원을 투자해 CEO 알렉산더 왕을 영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AI 스타트업 ‘인플렉션’의 공동 설립자를 데려와 그 팀 전체를 합류시켰다. AI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유능한 인재 확보다.
그러나 AI 인재의 범주는 매우 넓다.흔히 AI 인재라고 하면 데이터를 가공하고 분석하는 프로그래머나 데이터 과학자만 떠올리기 쉽지만, AI 시대의 인력 수요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인공지능의 핵심 알고리즘과 모델을 연구·개발하는 컴퓨터 과학자와 수학자, 나아가 AI 서비스를 실제 구현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시스템 개발자도 필수적이다. 또한 AI 모델의 학습을 가능케 하는 데이터 분야 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인재는 다양한 기초과학 및 학문 분야의 축적에서 탄생한다. 실제로 딥러닝 알고리즘의 혁신은 선형대수학, 통계학, 신경과학 등의 학문적 토대 없이는 불가능했다. 자연어 처리나 지식 추론 기술의 발전 역시 언어학, 논리학, 인지과학 등의 연구 성과가 밑거름이 되었다. AI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의 혁신 또한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등 오랜 기초 연구 성과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반도체학과 설립이 미봉책인 이유 단기적인 인력 부족 문제 때문에 눈앞의 유행 분야 교육에만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표적인 예로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니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신설하자”는 식의 대응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대학들이 정원 확보를 위해 급조한 그때뿐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초학문의 저변을 두텁게 하여 장기적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AI를 비롯한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일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 장기 투자다. 열 명을 키우면 그중 두세 명 정도 성공해도 잘한 셈이라는 것이 연구개발 인력 양성의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인재 전략은 긴 안목으로 실패를 감내하며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비결 중 하나는 70년 넘게 유지해온 국립보건원(NIH) 중심의 연구지원 생태계다. NIH와 과학재단(NSF) 등의 연방 연구비는 매년 수천 건의 프로젝트에 수십만 명의 연구자를 지원하며, 암 치료부터 기후 대응, 양자컴퓨팅에 이르는 미국 과학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대학 연구실, 병원, 기업, 스타트업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생태계를 이뤄 혁신을 일궈내는 밑바탕에는 이렇게 정부가 연구 인력을 폭넓게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결국 AI 시대 인재 정책의 교훈은 ‘정부가 비켜야 산다’는 것이다. 정부는 불필요한 간섭과 조급한 성과주의를 버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연구·교육 풍토를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AI 강국을 원한다면 10년, 20년을 바라보는 인재 양성 예산과 전략이 필수적이다.
한편 AI 인재 전략에는 새로운 세대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 산업 인력의 재교육(reskilling)과 역량 강화도 중요한 축으로 포함된다.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며, 이 제조 기반을 AI와 접목해 스마트 제조로 전환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열쇠다. 그리고 이러한 스마트 제조로의 전환이야말로 제조업 분야 수직적 AI 발전을 이끄는 토대가 된다.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와 수요에 맞는 AI 솔루션을 개발·적용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폴리텍대, 산업혁신부처 산하로 제조 현장에서 AI를 도입하려 해도 정작 그 기술을 다룰 인력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미 생산라인 자동화, 예측 유지보수, 공정 최적화 등에 AI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현장 노동자와 엔지니어를 위한 AI 재교육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디지털 전환의 혜택이 일부 IT 인력이나 경영진에만 머무르고 현장까지 확산되지 못하면 산업 전체의 혁신은 반쪽에 그친다.
어떻게 대규모로 기존 인력의 AI 재교육을 실현할 것인가? 다행히 우리에겐 전국에 걸쳐 실습 시설과 교수진을 갖춘 한국폴리텍대학 체계가 있다. 폴리텍대학은 현재 고용노동부 산하에서 직업훈련 및 재취업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인프라를 제조업 종사자 대상 AI 재교육의 허브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이미 폴리텍대학에는 중장년층을 위한 직업 전환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에 AI 및 디지털 전환 커리큘럼을 대폭 확충하면 지역별 특화 재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자동차 부품 산업이 밀집한 지역의 폴리텍 캠퍼스에서는 스마트 팩토리를 위한 AI 과정을, 섬유 산업 지역에서는 AI 기반 공정 관리 과정을 개설하는 식이다. 현장 숙련공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AI 활용법을 배우고 새로운 기술을 체득하도록 지원하면, 기업도 인력 구조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폴리텍대학을 고용부가 아닌 산업부 등 산업혁신 부처 산하로 이관해 제조업 AI 전환의 전진기지로 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핵심은 기존 산업 노동자의 업스킬(up-skilling) 없이는 산업의 AI 전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역 종합대와 함께 AI 생태계 구축을 AI 인재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지역 단위 거점 전략도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폴리텍대학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해당 지역의 종합대학 및 연구기관과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은 지역 산업 특성에 맞는 응용연구와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폴리텍대학은 그 지역 산업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AI 실무 교육과 재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역할 분담과 협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A지역의 대학이 AI를 활용한 스마트농업 기술을 연구한다면, 같은 지역 폴리텍대학에서는 그 연구와 연계해 농기계 제조업 종사자나 영농인을 위한 AI 활용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식이다. 이처럼 지역의 대학과 폴리텍이 힘을 합치는 거점을 통해 AI 인재 양성과 기술 확산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