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당시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군 간부를 특진시키라고 지시하는 장면을 보면서 방첩사령부 군인들이 떠올랐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가장 괘씸한 부대가 어디냐”고 물으면 “방첩사”라고 답할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은 고교 후배(여인형)를 방첩사령관에 임명했다. 계엄 당시 방첩사엔 이 대통령 등을 체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계엄 가담 방첩사 수사 박탈 추진
방향 잘못돼 간첩 적발 차질 우려
스파이 대응력 유지한 개혁 돼야
그런데 방첩사 요원들의 계엄 시 행동은 이상했다. 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 군인들은 국회에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전원을 차단하며 명령에 따르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방첩사 요원 상당수는 편의점과 휴게소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앞으로 진상 규명이 되겠지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군 관계자들은 “방첩사 요원들이 체포 명령에 저항한 것”이라고 말한다. 계엄에 가담한 방첩사 간부가 지시에 안 따르는 영관급 팀장을 폭행했다는 증언도 있다. 얻어맞은 팀장은 팀원들을 이끌고 국회 대신 인근 편의점으로 진입해 라면을 먹었다는 얘기가 돈다.
계엄 세력에겐 이런 방첩사 요원들이 무능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잘 아는 한 예비역 간부는 “간첩을 체포하는 무서운 요원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간첩 잡듯 달려들었다면 지금쯤 구금시설엔 윤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정치인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계엄의 시간이 지나가고 책임자 처벌이 시작됐다. 여 전 사령관은 두 번 구속됐다. 정치인 체포와 선관위 서버 확보 등을 지시한 간부들도 법정에 섰다. 방첩사 조직은 수술대에 올랐다. 방첩사 기능을 대폭 축소해 첩보 수집은 국방부 정보본부로, 수사권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넘기고 방첩 기능만 남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 지점에서 대공 수사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진다.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방첩사에서 정보·수사권을 떼어내면 간첩 수사가 어려워진다”며 “군 내부의 스파이 수사는 국정원 등이 맡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방첩사와 공조했던 전직 경찰 보안수사 간부는 “방첩사는 군 특유의 대공수사 노하우가 있다”며 “방첩사 수사권을 박탈하면 북한만 좋아할 일”이라고 했다.
북한의 대남 공작은 멈춤이 없고, 최근엔 중국의 군사기밀 탈취가 심각하다. 스파이 적발은 보안점검에서 출발하곤 한다. 몇 년 전부터 중국인이 휴대전화를 소지한 우리 병사를 포섭해 군사기밀을 빼낸 사건이 잇따랐다. 작은 단서에서 출발해 특수공작 등을 통해 스파이를 추적한다. 얼마 전 군 기밀을 빼내려고 제주로 입국하는 중국인을 방첩사가 체포한 것이 전형적 사례다.
방첩사가 군사기밀 유출 단서를 찾는 보안점검을 각 부대로 넘길 경우 자체 점검에서 문제가 발견됐을 때 사단장이나 사령관이 자발적으로 방첩사에 이실직고할지도 의문이다. 문책을 자초하기보단 덮으려 하지 않을까. 얼마 전 해외 ‘블랙요원’(비밀 공작원) 명단 유출 사건이 정보사에서 발생했을 때 방첩사가 수사진을 대거 투입해 해결하고 블랙요원을 안전하게 철수시킨 일도 있다.
방첩사의 계엄 개입을 차단하려면 다른 수술이 필요하다. 대통령령인 계엄사령부 직제를 개정하는 것이다. 직제 7조 3항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정보수사기관에 소속한 현역 장성급 장교 중에서 계엄사령관이 추천한 자’를 임명하게 돼 있다. 한 전직 장성은 “정보수사기관은 방첩사뿐이니 계엄에 자동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조항을 바꾸고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간첩 수사 무력화는 진단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계엄 사태의 신상필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계엄에 가담한 방첩사령관과 간부들은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방첩사가 내란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는 혁신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변화에 따른 이득이 간첩과 스파이에게 돌아간다면 뭔가 잘못된 수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