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 시한(8월 1일)을 하루 앞두고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 대표단을 만난 뒤 “미국이 한국과 전면적 무역협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 대한 관세는 15%로, 미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자신의 SNS에 “큰 고비를 하나 넘겼다”며 협상 타결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협상은 일단 고율 관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점에서 선방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 예고했던 25% 관세 부과를 막고,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인 15%로 조정한 것은 나름의 성과다. 특히 한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쌀·쇠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이 없었고, 전략물자인 지도 반출도 협상 의제에서 빠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지난 6월 새 정부 출범 후 한·미 정상회담조차 갖지 못한 이재명 정부로선 외교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를 ‘성공적 협상’이라고 과하게 자찬해서는 곤란하다. 협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진짜 중요한 것은 이후 이행 과정에서의 실질적 이득 확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양국이 어제 타결된 합의 원칙을 앞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펀드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처럼 수익 분배 구조가 불균형하게 설계될 경우 한국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전체 투자펀드에서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는 보증 기반의 ‘캐피털 콜’ 방식이어서 실제 자금이 즉시 집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전면 통제하는 구조라면 향후 분쟁의 소지가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해당 수익은 미국 내 재투자나 유보로 이해하고 있다”며 “펀드 구조나 수익 배분 방식이 확정되지 않아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익 배분을 둘러싼 해석 차이는 한·미 간에도 ‘동상이몽’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리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의 우려도 있다.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 아래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지만, 이번 합의로 일본 자동차(기존 2.5%)와 함께 모두 15%의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또 1500억 달러가 투입되는 미국 조선산업 재건(MASGA) 과정에서 한국의 고급 기술 인력과 생산 역량이 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확대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현지 투자와 생산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만큼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 규모가 한국의 2.3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충격을 흡수하려면 기업 활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어제 세법 개정안을 통해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상해 25%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기업의 경영 부담을 높이는 ‘더 센 상법’과 ‘노란봉투법’까지 예고했다. 기업들은 졸지에 해외 투자 확대와 국내 규제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 정부가 기업 총수들까지 현지에서 뛰는 등 기업의 역량을 앞세워 고율 관세 폭탄을 피했다면 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책을 강화하는 게 순리다. 말로만 실용적 시장주의가 아니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 뒷받침이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