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정청래(4선) 의원이 2일 167석 거여(巨與)의 새 수장으로 선출됐다. 정 대표는 이날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최종 득표율 61.74%로 경쟁자인 박찬대 의원(3선·38.26%)을 23.48%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권리당원 투표(반영 비율 55%), 대의원 투표(15%), 국민 여론조사(30%) 결과를 합산한 수치다. 정 대표의 임기는 1년이다.
정 대표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66.48%를 득표해 박 의원(33.52%)을 압도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정 대표는 60.46%를 기록해 박 의원(39.54%)을 큰 폭으로 앞섰다. 대의원 투표에서는 박 의원이 53.09%로 정 대표(46.91%)를 이겼지만, 최종 결과는 정 의원의 승리였다. 정 대표는 박 의원의 지역구(인천 연수갑)가 있는 경기·인천 권리당원 투표에서도 득표율 68.25%로 박 의원(31.75%)보다 앞섰다.
당권 레이스 초반부터 정 대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을 거치며 쌓은 높은 인지도를 발판으로 승기를 선점했다. 지난달 19일 충청권, 20일 영남권 권리당원 투표에서 박 의원을 큰 폭으로 앞서며 ‘대세론’을 형성했다. 당내에서는 “지난 대선 기간 전체 당원의 30% 정도가 분포한 호남 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표밭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 대표는 이날 정견발표에서 “민심을 이기는 정권이 없고 당심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고 했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의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당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짙은 남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자주 틀었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배경 음악으로 입장했다.
선명성을 앞세워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수장이 된 정 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쟁점 법안에 대한 속도전을 약속했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검찰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을 추석 전에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며 “전대가 끝나는 즉시 지금 바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정 대표는 또 “윤석열의 비상계엄 내란 사태는 다시는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내란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을 철저하게 처벌하고 단죄해야 한다”며 “프랑스 공화국이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았듯이 대한민국도 내란 범죄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당심과 민심은 다르지 않다”며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게 돼 있지만, 그 저항은 제가 온몸으로 돌파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여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라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국민의힘의) 사과와 반성 없이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정 대표는 경선 기간 주장했던 위헌정당 해산심판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세력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며 “그때 당 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15일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야(對野) 관계에는 빨간불이 켜질 전망이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정 대표의 당선을 축하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청래의 민주당’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라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대야 투쟁’ ‘야당 협박’을 멈추고 국민의힘을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정 대표는 취임 첫 행보로 3일 오전 당 대표 출마 선언 직후 첫 행선지였던 전남 나주를 다시 찾아 수해 복구 봉사를 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전대 직후 최고위원들을 소집해 비서실장에 한민수(초선) 의원을, 정무실장에 김영환(초선) 의원을 내정했다. 대변인은 권향엽(초선) 의원이 맡는다. 민주당은 이날 전대에서 김민석 총리 사퇴로 공석이 된 최고위원 자리에 3선 논산시장 출신 황명선(초선) 의원을 선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영상 축사를 통해 “다시 성장하고 도약하는 나라,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며 “한동안은 치열하게 경쟁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보다는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해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날 전대에는 이 대통령을 대신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 김병욱 정무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현직 의원인 김민석 국무총리와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현장에 왔다.
이날 개표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가수 이은미씨가 무대에 올라 히트곡 ‘애인 있어요’ 등 네 곡을 불러 당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씨는 “오랜 민주진영의 지지자였어도 당적을 갖지 않았지만, 2022년 대선에서 석패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 권리당원이 됐다”며 “이 정도(환호)면 제가 다음 총선에 출마해도 당선될 것 같다”고 말했다.